가온누리홈 우실하 소개 전통찻집 가온누리 일죽화랑 가온누리 사랑방 일반자료실, 사진과 각종 자료 저서안내 논문안내 우실하의 시사문화펀치 고대사 사진자료 삼태극 사진자료 태양조 사진자료

가온누리 사랑방

이곳은 자유로운 게시판입니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예의에 맞게 글을 올려주세요. 파일첨부도 가능합니다. 예전 사랑방 가기


    Total : 404, 1 / 21 pages login join  

날 짜    2015-09-18 16:57:04  (조회수: 1323)
이 름    우종명
제 목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중국 동북공정 지도를 통째로 베낀 ‘동북아역사지도’

“대한민국 국민 세금 47억 원의 국고를 들여서 60여 명의 학자들이 8년 동안을 작업하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가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을 철저하게 추종하는 내용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편찬사업 재단수시설명회 자료를 보면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우리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으므로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들게 되었다’면서 실제로는 중국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지도를 통째로 베낀 것이라는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의 새로운 책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사람이 아닌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교수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우리의 역사를 팔아먹는 구체적 장면들을 담아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창작한 역사관이 식민사관, 즉 조선총독부 사관인데, 해방 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이런 조선총독부사관을 추종하는 것을 ‘매국사관’이라고 했다.”

이덕일 소장은 작년에 출판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현구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 2010)의 내용이 일제 식민사관을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었는데, 김현구가 형사상 명예훼손과 민사상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 중 명예훼손 건에 대해 5월 7일 서울지검으로부터 ‘무혐의’(증거불충분) 처분을 받은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김현구의 ‘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우리 고대사학계의 정설로 “해방 후 매국사학이 한국사학계를 장악하고, 우리 역사를 난도질하면서도 ‘임나일본부설’은 금기로 생각하고 아무도 추종하지 않았다.

김현구가 1985년 ‘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내용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의 극우파 역사학자인 미즈노유(水野祐)로부터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고대교수로 재직하며 ‘가야를 임나로 둔갑시켜 고대 야ㅏ마토왜(大和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변종인 이른바 ‘한반도 남부 경영설’을 제기하면서 임나일본부가 이 땅에 부활했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책을 통해 식민사학의 원조 쓰다 소키치(津田 左右吉)도 김해지역의 소국으로 그렸던 임나를 전라남도 전역과 전라북도, 경상남북도 일부 및 충청남북도 일부까지 차지했던 상당한 제국이었다고 묘사하였다. 이런 매국사학을 주창하고도 제재를 받기는커녕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과 동부아역사재단 이사로 승승장구하면서 국가예산으로 ‘고대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논문을 쏟아내었다. 그러자 젊은 사학도들이 그처럼 해야 우리 역사학계에서 성공하는 줄 알고 이에 동조하면서 사료적 근거가 전혀 없는 가야 = 임나설이 한국고대사학계의 정설이 되어,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임나 4현이 전라남도냐 경상남도냐를 가지고 갑론을박 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처럼 서생(書生)이 서생(鼠生)으로, 악이 선이 되는 가치전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비판했다고 이덕일소장이 고소를 당해 경찰과 검찰, 법원에 불려 다녔다.”고 한다.


이 나라가 70년 전에 광복된, 독립국이고, 정부는 있는가?
이 소장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3가지의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첫째, 이 나라는 과연 70년 전에 광복되었는가?
둘째,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인가?
셋째, 이 나라에 정부는 있는가?”로서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이나 일본에 팔아먹는 매국사학자들의 주요 자금줄은 대한민국들의 세금 국고다. 반면 우리 역사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사비를 털어서 연구하여 맞서 왔다. 어떤 독립국가에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리고 국회 동북아역사왜곡 대책특위에서만 해도 수차 밝혔듯이 이제 저들의 학문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그래도 교육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해도 학계에서 해결하라고 그들 편을 든다.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가 있기는 한가? 다행히 검찰에서는 김현구가 고소한 명예훼손 건은 ‘혐의 없음’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게 광복 70년 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과연 광복이 된 것인가?”라며 절실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2013년까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으로서 동북아역사지도의 책임을 맡고 있던 배성준이 서울대에 있던 2002년에 『진단학보』에 낸 ‘울릉도ㆍ독도 명칭 변화를 통해서 본 독도 인식의 변천’이라는 논문과 2005년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자격으로 『문화과학』에 낸 ‘독도 문제를 보는 비판적 시각을 위하여’라는 논문에서 “『삼국사기』의 우산국 기사와 『고려사』 지리지에서 우산국은 울릉도일 뿐 어디에도 독도를 포괄한다는 말이 없다.”면서 노골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님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본이 스스로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인정한 ‘태정관 지령’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배성준은 2005년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출판한 『만주 - 그 땅, 사람, 그리고 역사』에서 간도가 우리 땅이었던 적이 없으며 간도를 되찾겠다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되찾아야 할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일본의 만주침략을 위한 간도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엉터리 주장을 한 사람이라는 것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중국이 동북공정에 나서고 일본이 임나일본부까지 재론할 수 있는 든든한 뒷 배경은 한국의 매국사학계가 장악한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우리 국가기관이라는 사실을 ‘동북아역사지도’가 일깨워주었다.” 고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상황이다.

사학자들의 매국 행동을 막아야 하는 것이 너무 절실한 시점이 된 것이다. “과거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 자기 이익을 챙겼지만 지금의 매국사학자들은 우리역사를 팔아먹고 있다. 역사는 민족의 미래다. 우리의 미래를 팔아먹는 것이다. 그래서 의로운 국민들이 ‘역사의병대’까지 만들어 나라와 역사를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의로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요약하여 소개한다. 출처: [한국NGO신문] 박정학 기자 (요약 본)



Ⅱ. 김현구 씨 역사관에 대한 문제제기
김현구 씨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 2010)』에서 임나를 백제가 지배한 것처럼 쓰기도 하고, 임나를 야마토왜가 지배한 것처럼 쓰기도 해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당연히 방점은 야마토왜가 지배했다는 후자에 있습니다. 같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서 평생 식민사학과 맞서 싸웠던 최재석 교수는 “(김현구 씨의 역사관은) 한마디로 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최재석, 『역경의 행운』 244쪽)"라고 비판했습니다. 김현구 씨 역사관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치며 군사원조를 구걸했다고 주장
① “당시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자국 주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전 투구(泥田鬪狗)를 전개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국은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군사원조를 요청하거나 적어도 상대국에게 군사원조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삼국 중에서 어느 나라를 파트너로 삼을 것인가 하는 캐스팅 보드는 일본이 쥐고 있었다(김현구,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29쪽)"





② “당시 한반도에서는 백제, 고구려, 신라 3국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3국은 서로 야마토정권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40쪽)"
  -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야마토에 군사원조를 요청했다고 기술
  - 일본인들도 믿지 않는 『일본서기』 에만 나오는 주장.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는 전혀 나오지 않음.
  - 고구려·신라·백제 등이 야마토에 조공사(調頁使:세금이나 공물을 바치는 사신)를 보냈   다면서 야마토를 세 나라의 상국(上國)으로 기술.




2. 백제가 야마토에 공주와 왕지를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기술
① “한편 (『일본서기』)「웅략기」5년(461)조에 의하면 (백제에서) 왕녀들 대신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곤지도 도일 목적이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의다랑(意多郞)이나 마나군(麻빼君).사아군(斯我君:모두 백제 왕자들엄) 등은 곤지 파견의 연장선상에서 도일하고 있다. 따라서 의다랑이나 마나군·사아군 등의 파견도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왕족들의 파견이 천황을 섬기기 위해서였다면 왕녀들의 파견 목적과 일치하게 된다. (김현구,「백제와 일본 사이의 왕실외교』,『고대 한일관계사의 제문제』, 169쪽)"
- 백제에서 왕녀와 왕자들을 보내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주장
- 백제에서 왕녀, 왕자들을 인질로 보낸 이유는 군사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주장
- 김현구 씨는 모든 책과 논문에서 ‘일왕’을 반드시 ‘천황’이라고 쓰고 있음
② 일왕이 백제왕녀 지진원을 불태워 죽였다고 기술
「천황이 “(백제 왕녀)지진원을 취하려 했는데 이시까와노따떼(石川楯)와 관계를 맺었으므로 화형에 처하였다”는 내용으로도 그들의 혼인상대가 짐작이 간다(김현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6쪽)』
③ 왕녀를 불태워죽이자 백제에서 사과의 돗으로 왕자를 보내 일왕을 섬기게 했다고 기술 “그런데「웅략기」5년(461)조에는 옛날에는 여(女:지진원)를 보냈는데 무례하여 나라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므로 동생인 곤지, 즉 남자를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직지왕이 누이동생인 신제도원을 파견한 이래 461년 곤지(昆支)를 파견할 때까지는 백제의 왕녀들이 왜에 파견되는 관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제도원·적계여랑·지진원 등이 그 왕녀들에 해당되는 것이다(김현구,「백제와 일본 사이의 왕실외교」,『고대 한일관계사의 제문제』, 167~   168쪽)"
- 야마토에서 백제 공주를 불태워죽인 것이 백제가 ‘무례’한 것이라고 서술
- 백제는 공주가 불타죽어도 항의하는 대신 왕자를 보내 사과했다는 주장
- 『일본서기』에만 나올 뿐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주장




3. 일 왕가가 백제왕실의 조상이라고 기술
- 임무영 검사는 「공소장〕에서 “(김현구는) 백제의 왕자가 현 천황가의 사조가 되는 등 매우 친밀한 관계였고”라고 적시했다. 김현구씨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는 비슷하게 쓰기도 했지만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에서는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을 했음.
① “그러나 지진원(화형)사건이 발생하자 백제에서는 461년 왕녀 대신 개로왕의 동생 곤지를 필두로 의다랑, 마나군, 사아군 등 백제 왕족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야마토정권은 직지가 귀국하기에 앞서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동성왕이나 무령왕의 부인도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 왕가에도 일본 천황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셈이다(김현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6~188쪽)"
-백제에서 야마토에 왕자를 인질로 보냈는데 일 왕실이 일본 여인들을 혼인시켜 주어 두 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주장.
-가야 및 백제계가 야마토정권을 수립했다는 사실과는 정반대의 주장
② “백제왕이 비다쯔(민달)천황의 손자라면 백제왕들이 일본천황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는 되지만 일본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문면(文面)만으로는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 ‘일본 천황가는 백제인들이었던 모양’ 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김현구,『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26쪽)"
-백제왕들이 일 왕가의 자손이지만 일 왕가가 백제인은 아니라는 서술로 「공소장」 과 정확히 반대되는 내용
-백제계가 야마토를 세운 것이 아니라 백제가 인질로 보낸 왕자에게 일 왕가가 피를 섞어 주었다는주장




4. 한국학계의 용어보다 일본학계의 용어가 맞다고 주장
임무영 검사의 「공소장」은, “즉, 피해자(김현구)의 견해는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을 부정 함은 물론, 일본이 고대사의 특정 시기에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을 점령하거나 통치했다는 사실을 일본인이 신봉하는 일본서기의 사료를 이용해 반박하는 내용(임무영「공소장」)"이라고 적시함. 이 역시 김현구 씨의 기술과 정반대 내용임.
① “한국 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보다는 한반도 남부지배라는 본질 을 담고 있는 일본 학계의 이른바 ‘남선(南鮮)경영론’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러나 ‘남선경영론’은 ‘남조선경영론’을 줄인 말로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남조선경영론’을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바꾼다면 ‘한반도 남부경영 론’ 정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김현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21~22쪽)"
- 한국학계에서 사용하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보다는 일본극우파 학자들이 사용하는 ‘남 선(南鮮)경영론’을 변형한 ‘한반도 남부경영론’을 사용하겠다는 내용.
② “그런데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가 지방장관으로 있던 차리(영산강 유역)는 전방후원형고분이 발견되는 지역과 중복된다. 다시 말하면 전방후원형 고분이 발견되는 지역은 왜계 백제관료가 지방장관으로 배치된 지역 중에서 백제조정이 직접 장악하고 있던 지역이나 중앙에서 군을 파견하여 상주시키던 지역이 아니라 조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산강 동안 차리의 지방장관으로 있던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야말로 ‘백제중추의 왕통이 아니라 직접 왜와 교류 관계가 있던 지방수장’이라는 성격에 맞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192쪽)」 "
- 야마토에서 온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가 전라도까지 직접 지배했다고 주장
- 야마토왜가 전라도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주장
- “일본인이 신봉하는 일본서기의 사료를 이용해 반박하는 내용”이라는 「공소장」과 정반대로『일본서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야마토가 전라도까지 지배했다고 주장




5. 야마토 왜군이 현재의 주한미군과 같다는 주장  
① “『일본서기』에는 507년에서 562년 사이에 백제가 야마토정권에 파견한 24회의 사자 중에서 백제의 요구가 명확히 적시되어 있는 경우는 14회라고 되어 있다. 그중에서 임나에 관한 내용은 5회이고 나머지 9회는 전부 원군이나 군수물자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당시 야마토정권과의 관계에서 백제가 일관되게 추구하던 것은 군사원조였다고 볼수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42~143쪽)"
② “당시 백제는 야마토정권으로부터 지원받은 군사를 임나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배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으로는 왜계 백제관료 등을 배치하고 있었다. 신라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치 오늘날 미군을 남북이 대치하는 휴전선에 배치하고 있는 것 처럼.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신라와의 접경인 임나지역에 야마토정권으로부터 제공받은 군대나 왜계 지휘관을 배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김현 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51쪽)"
-『일본서기』에 따른다 해도 야마토왜에서 백제에 보낸 구원군 숫자는 500~1,000명에 불과
- 군사 강국 백제가 500~1천의 구원군을 위해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는 논리 모순
- 야마토 왜군을 주한미군에 비교하는 것으로 아전인수격 해석
일본 극우파 교과서와 같은 사고
김현구씨의 지도 제목 ‘왜의 진격루트와 대방계’
임나(=가야)관  일본 극우파 후소사 교과서의 임나(=가라)관




6.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인지도 모른다고 주장
-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김현구 씨가 임나가 있었다는 식으로 강연하자 청중 들이 독도문제에 대해서 공격성 질문.
- 김현구 씨는 “본인은 독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답변이 불가능하다”면서, “본인이 동북아 재단 이사인데 이사회 연수회에서 서울법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독도에 관해서 강의했는데 학생들이 독도는 일본 것이네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측에도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 다. 우리 것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문제다. 전공이 아니어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라고 답했음(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강좌 녹취록)
-독도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지속적 침탈의 배경




7. 일왕의 전범 면제를 찬양
“결국 미국은 한 일본 연구가의 연구를 바탕으로 천황을 이용하여 700만 일본군을 저항 없이 항복시킨 것이다. 그리고 공산혁명을 막고 일본으로 하여금 극동(極東)의 반공 보루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게 만들었다(김현구,『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217쪽)"

- 원자폭탄 투하로 전력이 상실된 것을 외면하고 700만 운운하며 상황 호도
- 식민통치의 주범 일왕 히로히도의 전쟁 책임 면죄 찬양





 
백랑수
이덕일의 논거가 너무 약하다. 윤내현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신채호의 `고대의 요수는 란하`라는 주장에 대한 고민이 형편없이 부족하다. 동북아재단의 지도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낙랑군 위치 비정 지도 1 장 외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2015/09/21 x  
 
백랑수
님께 질문할 것은 아니지만 방법을 못찾아 그러니 양해바랍니다. 대체 회원 가입을 어떻게 하나요? 2015/09/21 x  
  우종명 이덕일씨의 논거가 너무 약하다 하셔서 말씀내용을 그대라 추가하여 2015/09/22    
  우종명 그대로 추가하였습니다. 2015/09/22    
 
백랑수
제가 말한 약한 논거란 님께서 이덕일의 책을 요약한 부분에 있다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제 표현이 모호했기 때문이겠지요. 괜한 수고만 끼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이덕일의 논거가 약하다고 한 것은 동북아재단에서 통째로 베꼈다는 동북아지도를 비판하는 논거가 너무약하여 걱정된다는 것이며 조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낙랑군의 비정을 <진서/지리지> 낙랑군 수성현의 주석만을 유일한 기본 근거로 식민사관을 해체하겠다는 발상이 형편없이 약하다는 것이였습니다. 위만에 패한 준왕이 한반도 평양지역으로 도주하였다고 추정한 것은 결국 당시의 대요수 즉 <한서/지리지>의 대요수 비정에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는 소리이며 이는 윤내현이 위만이 발흥한 이후 대요수가 지금의 란하에서 지금의 요하로 옮겨왔다는 주장과 같은 내용으로 한국고대사를 2015/09/23 x  
 
백랑수
아직도 정확히 보고 있지 못한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대요수.요하 그리고 요동의 비정은 한국고대사의 공간적 식민사관을 깨트리는 가장 기본적인 지리 개념인데 중국 25 개 정사에 딸린 모든 지리지는 청나라가 멸망하는 1911 년까지 지금의 란하로 기록.설명되어 있습니다. 신채호가 `고대의 요수는 란하`라 한 바로 그 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한부터 청까지 2100 여년을 말한 것이며 한국에게는 객관적 사료라 할 수 있는 중국정사급 지리지 기록들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5/09/23 x  
 
백랑수
따라서 1911 년까지도 요하는 지금의 란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후조선의 압록수는 지금의 란하 동남쪽 지류인 청룡하였고 이 청룡하는 고려.고구려 시기도 압록수였으며 단군조선 시기에는 열수라 불리웠고 한 유철이 이곳에 낙랑군을 설치한 것입니다. 결국 지금의 우하량.동산취 유적지는 왕검조선 개국후 대한제국까지 낙랑군 설치 기간을 제외한 약 4000 여년 동안 대한민국 선행국들의 강역이였고 지금의 적봉 지역은 왕검조선 첫도읍지인 태백산 우수하 지역과 부루에게 맡겨진 부여 땅이였고 그 이전은 예땅이였으니 이러한 지리를 잘못이해하여 준왕이 남천한 곳이 한반도 평양이라고 주장하면 우리 스스로 선조들이 피를 흘려 지킨 강역을 갖다 버리는 꼴이며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에 대처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2015/09/23 x  
 
백랑수
이덕일이 주장한 낙랑군 위치라며 `장성소기`했다는 수성현은 서진 초 선비족 모용외 세력의 발흥이나 팔왕자의 난 등으로 요동.낙랑으로 향하는 육로가 차단되어 군세가 약화되었는지 요동군의 신창.안시현, 낙랑군의 수성현.함자현 등만이 서쪽으로 당시 바다였던 지금의 란하 하류를 서쪽으로 건너서 요서군 남쪽 지역인 비여.임유현 부근으로 교치된 것을 당 시기 편찬된 <진서/지리지>에 잘못 기록하여 발생한 것인데 저 오류 기록을 낙랑군 비정의 근거기록으로 제시하는 것은 학문적 자살행위이며 중국인들도 비웃을 만한 일일 것입니다. 2015/09/23 x  
 
백랑수
또한 준왕이 남주하여 한반도 평양에 이르렀을 것이란 추정도 비록 후조선 시기에도 모든 역사지리서 저술가들도 비슷한 지리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잘못된 역사지리 인식입니다. 왜냐하면 한 곧 삼한을 한백겸의 최초 주장과 같이 한반도 한수 이남 지역에서 흥망했다고 추정하면 <삼국사기> 기록이나 위진남북조 시기 남조의 백제 기사를 전혀 설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강역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지면 신라의 발흥지는 삼한을 통일할 수 없는 지역에 쳐박히게 됩니다. 이러한 삼국비정은 후조선 태조 이성계의 한반도 한수로의 남천이 원인이랄 수도 있겠지만 강역 내에서의 작은 실수일 뿐입니다. 물론 후조선 유사들의 잘못된 지리인식이 일본왜종들이 식민사관을 창조하는 데 일조한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후조선인들은 당시 2015/09/23 x  
 
백랑수
조선의 서북국경을 흐르는 압록수를 지금의 란하 동남쪽 지류인 청룡하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요하 또한 지금의 란하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현대지도에 표기된 바와 같이 지금의 요하와 지금의 압록수가 위만이 조선을 사탈한 시기부터 조금도 변동없었다고 굳게 믿는 현재의 한국사학계와 재약사학계입니다. 완벽하게도 일본왜종들이 창조한 식민사관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왜종들은 1934 년 만주제국지도에서 요하를 지금의 란하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표시하면서 중국 사서에 기록된 바와 비슷하게 부근의 지명들도 전면적.대대적으로 동쪽으로 이동시켜 오늘의 지도 표기 정황에 이른 것입니다. 대체 <한서/지리지>에 설명된 1250 리 길이의 대요수가 어떻게 3300 리 길이의 요하로 바뀔 수 있습니까? 2015/09/23 x  
 
백랑수
후조선 시기 선학들이 비록 낙랑군이나 한의 위치 비정을 잘못했다 하여도 서북쪽 국경선인 압록강과 요하는 정확히 이해하고 지켰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2100 여년 동안 지금의 요하가 <한서/지리지>의 요하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 지금의 대릉하 유역 이남지역이 토착지였던 마한.백제.진한 및 통일신라.고려.후조선의 서북강역은 어떻게 찾을 생각입니까? 아니 알기나 합니까? 대략 이런 이유때문에 이덕일의 논거가 약하다고 한 것입니다. 요하.요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식민사관.동북공정 둘 다 놓치는 것입니다. 요하문명? 당연히 한국은 주인이면서도 새되는 것입니다. 우실하가 아무리 적봉.능원 지역의 고고학적 출토품들이 한반도의 것과 같다고 하여도, 같이 연구하자 하여도 중국은 거부해야 할 속사정이 있는것입니다 2015/09/23 x  
 
백랑수
글 쓰기가 무척 불편하군요. 회원가입하면 쉬울라나? 2015/09/23 x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목록보기 답변달기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copyright © 1989-2006 가온누리. All rights are reserved.
admin 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