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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의 시사문화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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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2-06-14 01:18:32  (조회수: 3890)
이 름    admin
제 목    문화적 구별과 차별의 논리


1. 한 외국인의 한국 체험

[조선일보]에서는 98년 겨울부터 '글로벌 에티켓 시대'라는 고정 난을 만들고 '겸손하고 교양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이 되는 길'이라는 부재로, 우리 사회가 고쳐야할 점들을 지적하는 사례들을 독자투고로 싣고 있다.

지난 1999년 1월 8일자에는 26번째 글로 '사생은 왜 묻는지'라는 제목의 마르셀라 퍼로우(여: 27세, LG 투자관계부)라는 분의 글이 실렸다. 그녀는 자기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처음 보는 한국 남자가 "결혼했어요?" "왜 결혼을 하지 않았어요?" 등의 사생활을 묻는 바람에 '기분이 바빠서 두 정거장 앞서서 내렸었다.'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기분이 상한 친구에게 "한국에서는 사생활에 관한 질문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경우가 많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주었지만 "이 친구는 한국에서 받은 나쁜 첫인상을 쉽게 지워버리지 못햇다."고 소개하면서 아래와 같이 글을 맺고 있다.

" 많은 외국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나 신체적 특징을 화제로 삼는 것을 놀림으로 생각하거나, 아주 무례한 행동으로 여긴다. 한국 사람들은 있는 사실을 얘기하는데 뭐 그러느냐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말을 듣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 친밀한 사이가 되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한국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때로는 너무 사적이고, 때로는 지나치게 무례한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다.([조선일보], 1999. 1. 8일자, 3면)

2. 문화적 구별의 논리

   위에서 본 사례에는 문화에 관한 많은 생각거리들이 내재되어 있다. 먼저 다양한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구별의 논리이다. 그녀는 "많은 외국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나 신체적 특징을 화제로 삼는 것을 놀림으로 생각하거나, 아주 무례한 행동으로 여긴다."는 것과 "한국에서는 사생활에 관한 질문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문화적인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적인 '다름' '같지 않음' '차이'일 뿐이다.

참으로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이라면,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기분상하지 않을 줄 알아야한다. 또한 그러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첫인상'을 기분 나쁜 기억으로 간직하여서도 안된다. 그것은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결혼여부를 질문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그렇게 무례한 질문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이라면,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를 알아보려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 '왜'를 알고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다. 한 사회의 문화는 그 사회의 역사, 세계관, 우주관, 인간관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선이해 없이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잣대로 바라다보면 '이상하고', '불합리하고',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무례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결혼했어요?"라는 질문에 신경질적이고 기분 나빠하는 서양인들이 오히려 이해할 수 없고 무례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3. 문화적 차별의 논리
  
  그녀는 "한국 사람들의 이런 물음은 반쯤은 호기심 때문이고, 반쯤은 자신과 뭔가 공통 화제를 찾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은 대답을 하는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물음이다"라고 말한다. 이해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보기에' '무례한 행동'이며 '나쁜 첫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감성이나 기분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 '자신이 보기에' 무례한 행동들은 '누가 보아도' 무례한 행동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 "국적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그녀가 자라온 '서구적 잣대'로 서구와 다른 문화를 바라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잣대로 보면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이 야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잘 알면서도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문화적 차별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다.

4. 21세기의 글로벌 에티켓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은 과연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 위의 체험사례를 보면 '겸손하고 교양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이 되는 '글로벌 에티켓'이라는 것이 마치 '서양 닮아가기'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기분 나쁘니까 서구식으로 고치라는 투다.

  이런 식의 논법이 바로 '서양 닮아가기'로서의 '근대화=서구화' 논리였고, 현재 우리의 문화적 종속상황은 이런 논리의 결과물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전통문화를 상실하고 서구에 종속되어버린 제3세계 문화의 공통적인 현실이다.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이 되는 참된 '글로벌 에티켓'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자기중심적인 가치판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지적 오만의 역사가 문화제국주의의 역사였고, 그 결과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중심국의 문화에 동화되고 동질화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지적 편견과 오만에 바탕 한 '문화적 마녀사냥'이 지속된다면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가축으로서의 개'를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는 프랑스 여배우에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한 해에 2000만명이 굶어죽고 있는 우리의 지구촌 현실에서, 식용 가능한 고기(?)를 개통조림으로 낭비(?)하는 서구인들의 '애완견으로서의 개' 문화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세계인'이 되는 참된 '글로벌 에티켓'은 자신의 문화적 잣대의 제한성과 한계성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가오는 21세기에도 '얼마나 더 서구화되었는가?'하는 것이 문화적 선진국의 척도가 될 것이고, 세계문화의 다양성은 여전히 '문화적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우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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