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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
2003-04-18 11:27:48 (조회수: 14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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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우실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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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시민의 신문> 기획특집: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이대로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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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시민의 신문> 2003.4.21일자에 실린 기획특집 원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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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신문｣ 기획특집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용 이대로는 안 된다.
우실하 (본지 편집위원, 연세대강사)
1. 사면 불감증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을 기념해 운전면허 벌점을 없애주는 일반사면이 예고되면서, 교통규칙 위반자들이 범칙금 통지서를 작성하는 경찰에게 “필요도 없는 딱지를 왜 끊느냐?”고 항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고 한다.
2002년 연말 특별사면을 앞두고 정치권과의 물밑 거래 의혹이 제기됐었다(｢동아일보｣ 2003.1.3). 특별사면 된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사면 발표 9일 전인 12월 21일 2심을 포기하고 항소 취하서를 냈고, 서형석 전 대우그룹 기조실장 등 대우 임원 3명이 사면 6일 전인 12월 24일 3심을 포기하고 상고 취하서를 각각 법원에 내 형이 확정된 것이다. 이는 형이 확정되어야 특별사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사면법 제3조 제2항). 당시 대우 측 변호인이었던 석진강 변호사의 말이 압권이다. “임기 말이면 사면이 있을 것으로 예상, 사면 자격을 얻기 위해 재판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일반국민 뿐만이 아니라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야할 법조인들조차도 ‘사면 불감증 환자’임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다. 사회를 뒤흔든 파렴치범들도 올 8.15나 연말이면 사면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이제까지 특별사면이 정략적인 수준에서 남용되어 왔고, 이런 관행 때문에 부정과 비리가 재생산되어 왔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사면 몇 일전에 항소나 상고를 포기하는 정치권과의 물밑 거래를 보면 이런 의구심은 더해 간다.
오는 사월 초파일에 노무현 정부의 첫 번째 특별사면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역대 정권에서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하고 ‘민족 대화합’이라는 미명아래 이뤄진 특별사면을 통해서, 각종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다시 복귀하는 것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며 노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의 첫 번째 특별사면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볼 것이다.
2. 사면권의 존재 이유와 한계
대통령의 사면권은 과거 군주제의 유산이지만 많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면권을 인정하고 있다. 사면권의 존재 이유는 ‘법원의 판결이 시대상황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정의의 관념에 반하게 되는 경우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서 그 부당함을 시정하고 국민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현행법에서 사면이란, 형을 선고받은 자에 대하여 형 선고 효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켜 주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않은 자에 대하여 공소권을 소멸시켜 주는 대통령의 권한을 말한다(헌법 제79조, 사면법 제5조).
특정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행사되는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를 얻게 되어 있다(헌법 제79조 제2항). 그러나 특정인에 대해서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특별사면’은,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상신'(上申)하면(사면법 제10조), 국무 회의 심의를 거치는 것(헌법 제89조 제2항) 외에는 별다른 법적 제한 장치가 없다.
법무부장관의 상신 이라는 것도 대통령에게 권한 발동을 위한 판단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일 뿐이고, 일반적으로 법무부장관이 상신 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국무위원 임명 과정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이나, 구속 영장 발부 과정에서 검사의 '신청'과는 달리, 사면법에서는 법무부장관의 '상신'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자유재량에 속하는 것으로서 법원에 의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나라와 독일의 다수설 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자유재량을 법적으로 아무런 제한이 없는 '자의'라고 볼 수는 없다. 곧, 헌법을 준수할 대통령의 직무상 의무(헌법 제69조)에 비추어 ‘헌법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특별사면은 그것에 부여된 목적에 따라서만 행사되어야 하고 헌법에 규정된 여러 규범의 제한을 받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 특별사면은 국가 이익과 국민 화합의 차원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정치적으로 남용되거나 정략적 차원에서 행사될 수 없으며, (2) 특별사면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기준에 따라야 하고 특정인을 차별대우할 수 없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평등 원칙의 제한을 받는다고 보아야하며, (3) 법치주의의 근간인 사법부의 존재 이유나 권위를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는 점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특별사면권이 이런 ‘헌법 내재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행사될 때, 일부 수혜자들에게는 ‘제왕적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은총’일지 모르지만 법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이런 ‘헌법 내재적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정략적이고 선별적인 특별사면이 수 없이 행해져 왔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을 세탁했다고 속여 딱지만 새로 붙여서 내보내는 비양심적인 세탁소 주인은 역대 대통령이었고, 세탁물을 세탁하는 도구는 언제나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이었다.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이들을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특별사면 했을 때에도 ‘민족 대화합’이나 ‘화해와 용서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미화하기에 바빴다. 도대체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이 민족 대화합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반성도 하지 않는 이들을 용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하고 행해졌던 이런 특별사면이 오히려 국민 대화합을 해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허물어 왔던 것은 아닌가?
3. 특별사면의 실상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어떤 절차를 통해서 행사되는가? 2002년 8.15 특별사면을 앞두고 “민주당은 최근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규모의 8․15 사면을 건의하며 2000여 명의 대상자 명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동아일보｣ 2002.8.9일). 정당에서 특별사면 대상자의 명단을 ‘작성’하고 대통령께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1948년에 제정되어 한번도 고쳐지지 않은 사면법에 의하면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과 복권은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상신(上申)한다.”(제10조)고 명시하고 있다. 법에 의하면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을 ‘작성’해서 대통령께 ‘상신’할 수 있는 사람은 법무부장관이다. 예를 들어 검찰총장도 검찰관이나 형무소장의 보고에 의해서 법무부장관에게 특별사면을 ‘상신 할 것을 신청’ 할 수 있을 뿐이다(제11조).
‘상신’이라는 애매한 용어 때문에, 일반적으로 법무부장관이 ‘상신’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허점 때문에 집권당에서 2000여 명의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을 직접 ‘작성’하고 대통령께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사면법 제14조에는 법무부장관이 특별사면을 상신하는 신청서에 첨부되어야 하는 서류를 지정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범죄의 정상(情狀), 본인의 성행(性行), 수형(受刑) 중의 행장(行狀), 장래의 생계 기타 참고될 사항에 관한 조사서류”(제14조 제3항) 등이 있다. 이것은 복권(復權)의 경우에도 비슷하다(제16조).
만일 집권당에서 2000여 명의 특별사면 대상자를 작성했다면, 범죄인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이런 서류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략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법무부장관의 ‘상신’을 거치는 것은 대부분 장기 모범수의 경우이고, 비리 정치인이나 관료들에 대한 특별사면은 정치권에서 대상자를 선정해 온 것이 이제까지의 관행이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하고 특별사면 된 비리 정치인⋅관료들을 수 없이 보아왔고, 이런 관행 때문에 부정과 비리가 구조적으로 재생산된다고 보인다.
‘엿장수 맘대로’라는 말이 있다. 엿장수가 선심 쓸 때는 엿장수 자신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지만, 정치권이 선심 쓸 때 그 손해는 국민과 국가에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 특별사면권의 남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4. 사면권 제한에 대한 여론
1999년 말 손광운 변호사의 제안으로 시민단체들이 사면권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한 이래로 사면권 남용 문제는 시민사회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난 2002년 8월 7일 법원 전산망 게시판에 서울지법 정진경 판사가 <사면권은 대통령의 무제한의 권력인가?>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사면권 제한에 관련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2002년 8월 19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부정부패 청산과 극복을 위한 7개항의 결의 사항 중 하나로 ‘부정부패사범에 대한 사면 남용 반대'를 결의한 바 있다.
지난해 대선 당시 각 당 후보들도 사면권이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사면권이 헌법에 정해진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할지라도, 사법부의 권위와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하는 행사는 자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사면권은 엄격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제한된 범위 내에서 행하여져야 할 것입니다. 사면권의 엄격한 행사를 위하여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때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의견을 물어 이를 존중하도록 하는 방안이나 중립적인 사면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전 심의하도록 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법률신문｣ 2002.12.4일자).
사면권은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기준과 원칙에 따라 행해져야한다. ‘정치권 맘대로’ 특별사면 대상자를 선정하는 관행이 더 이상 이어져서는 안 된다.
5. 특별사면권 남용을 막을 법적 장치를 만들자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무제한적 권한’이 되어버린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고, 구체적인 대안 제시도 있었다. 이제 정치권의 결단만 남은 상태다. 기존의 논의를 토대로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해 본다.
첫째,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면심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두어 사면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그 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 일년에 몇 일밖에 활동하지 않을 사면심사위원회의 신설이 부담스럽다면, 기존에 활동 중인 부패방지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사면에 대한 심사 기능을 부여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둘째, 확정된 대상자들의 특별사면은 법무부장관이 대통령께 ‘제청’하거나 ‘신청’하도록 창구가 일원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상신’이라는 애매한 용어에서 오는 혼란을 피하고, 정치권의 정략적인 개입이나 물밑 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특별사면/복권에서도, (1) 형의 집행종료일 또는 집행이 면제된 일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거나, (2) 형기(刑期)의 1/3이나 1/2이 경과하지 않으면 대상자가 될 수 없도록 법제화하여야 한다.
현행 사면법에도 일부 이런 제한이 있다. 곧,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에게 특별사면/복권의 ‘상신을 신청’할 수 있는데(제11조), 이 경우에는 “형의 집행종료일 또는 집행이 면제된 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하지 못한다.”(제15조)는 제한 규정이 있다. 그러나 위의 규정은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에서 ‘상신을 신청’할 때에만 해당되며, 대부분 장기 모범수들이 대상이다.
정치권에서 관행적으로 선별해온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형의 선고가 내려지기 전에 정치권으로부터 특별사면을 약속 받고 항소나 상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의 사면법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위의 경과 규정을 특별사면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6. ‘제왕적 대통령’에서 ‘국민의 대통령’으로
미국의 한 유명 신문에서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보도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을 실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임을 내세워 ‘믿어 달라’고 외치며 ‘보통 사람’을 기만했던 시절을 격은 국민들은, 과거의 노 대통령과 현재의 노 대통령이 어떻게 다른지 지켜보고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대통령’이 된다면 온 국민들이 합심하여 ‘밀어줄’ 것이고,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의 유혹과 권좌에 안주할 때에는 ‘밀어낼’ 지도 모른다.
법조인 출신 대통령에게 사면권의 남용을 바로 잡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무례하거나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사면법 개정은 진정한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인사를 받는 ‘첫 대통령’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33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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