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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7 13:52:13 (조회수: 8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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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우실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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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 |
http://www.gaonnur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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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어느 철학자의 '부끄러운 고백'에 대하여(국악방송원고, 2003.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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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2년 12월 부터 <국악방송, FM 99.1MHz(서울,경기), FM 95.9MHz(남원 일대) >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5-6시까지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FM 국악특강>의 방송 원고이다. 방송에서는 이 원고를 바탕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가 똑 같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아래의 글은 2003.1.19일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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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특강 제7강(2003.1.19일 방송)
우실하(전 요녕대 교수, 사회학박사)
어느 철학자의 '부끄러운 고백'에 대하여
1. 어느 철학자의 '부끄러운 고백'에 대하여
최근에 아는 분의 소개로 철학자 조정옥이 쓴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고백}(서울:철학과 현실사, 2001)이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이 책은 저자의 10가지 생각을 각각의 장으로 나누어서 쉬운 수필 같이 펴낸 책이다. 이 책의 '두 번째 생각'의 제목이 <서양 음악과 한국 전통음악 사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녀는 이 곳에서 전통 음악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토해내고 있다.
우리의 음악 문화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두 번째 생각'의 내용은 4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취향의 강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한 글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인용문)
"오후 다섯 시만 되면 나는 하루 종일 듣던 클래식 FM 방송을 어김없이 꺼버린다. 오전 열한 시, 밤 열두 시도 마찬가지다. 그때부터는 한국 전통 음악이 울려나오기 때문이다. 카세트나 CD를 들을 수도 있지만 이 시간들은 내게 마치 암흑같이 느껴진다. 물론 서양 고전 음악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무리 싫은 것도 볼륨을 줄이고 계속해서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마음을 넓히고 들어보려고 해도 한국 전통 음악은 귀에 거슬린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꽹과리........... 그 모든 악기의 음질 자체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만일 그것들로 바하를 연주한다면 나는 기꺼이 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어본 전통 음악의 멜로디는 거의 다 끙끙 앓고 불평하는 신음소리처럼 들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두 다 일어서라", "모두 다 이것을 보라"는 듯한 선동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즉 개개인의 삶과 감정 그리고 실존적 상황에는 무관심한 채, 마치 모두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듯한 폭군적 음성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해 거의 무지한 나의 느낌이다.(39-40쪽)"
과연 이것이 그녀의 말대로 '아름다운 고백'이 될 수 있을까? 서양 음악은 '아무리 싫은 것도 볼륨을 줄이고 계속해서 들을 수 있고' 전통 음악은 '아무리 마음을 넓히고 들어보려고 해도 귀에 거슬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통 음악의 멜로디는 거의 끙끙 앓고 불평하는 신음소리처럼 들리는' 원인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이런 고백이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해 거의 무지한' 그녀의 느낌이라면, 그녀는 왜 전통 음악에 대해서 그렇게 무지하게 되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58년 생으로 나보다 2년 앞서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나는 초, 중, 고, 대학을 다니고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까지 단 한번도 제도교육과정에서 국악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쳤다면 이 책의 저자도 이런 왜곡된 서양음악 일변도의 교육을 받은 것은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양 음악 일변도의 왜곡된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그녀가 '전통음악에 대해서 무지'한 것은 당연하다. 그림이 '아는 만큼 보인다'면 음악은 '아는 만큼 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일방적 교육이라는 큰 문제를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슬쩍 넘어가 버리고 만다. 이 부분에 대한 그녀의 변명을 들어보자. 그녀는 책의 다른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인용문)
"한국 전통 음악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육이 서양 음악에 치중하기 때문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의 생신 날에는 어김없이 북과 꽹과리가 울려 펴졌었다. 우리 음악을 접할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꿈은 곧장 피아니스트로 돌변했다. 그러므로 서양 음악에 대한 나의 취향은 거의 선천적 본성으로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40-41쪽)"
이 인용문에 의하면 그녀는 어린 시절에 어른들의 생신 날에 어김없이 북과 꽹과리가 울려 퍼졌다는 기억을 가지고 우리 음악을 접할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반론한다. 일년 내내 방송과 학교 교육에서 서양음악 일변도로 듣고 배우는 상황에서, 일년에 몇 번 있는 어른들의 생신 날 울려 퍼지는 전통 음악을 들은 정도를 가지고 우리 음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하려는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아마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에서부터 서양음악이론에 따라 (1) 4/2박자, 4/3박자, 4/4박자, 8/6박자를 구별하면서 손을 저어가며 박자를 익혔고, (2) 콩나물 하나는 4분 음표 2개로 나뉘어지고 4분 음표는 8분 음표 2개로 다시 나뉘어지는 2분 박에 익숙하게 길들여졌을 것이며, (3) 고전음악, 낭만음악, 베토벤, 바하, 모차르트를 외워가며 시험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적 지식은 한국 전통음악을 이해하는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곧, (1) 4/2박자, 4/4박자 등을 아무리 잘 안다고 하더라도 전통음악에서 사용되는 각종 장단의 개념 예를 들면 굿거리장단, 세마치장단 등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전통음악은 서양음악의 이론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장단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2) 또한 서양음악의 2분박과는 달리 우리의 전통 음악은 3분박으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음악과 독일음악과의 차이는 서양음악과 한국 전통음악과의 차이에 비하면 차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미하며, 서양음악과 동양의 전통음악은 이론이나 악론 등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의 서양일변도의 음악교육이 그녀의 취향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서양 음악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것은, 책의 마지막 장인 '열 번째 생각' 첫 머리에 보이는 그녀의 고백에서 드러난다. 곧,
(인용문)
"나를 매료시킨 첫 번째 클래식 음악은 사춘기 때 들었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이었다. 무슨 곡인지도 모르면서 베토벤이라는 이름만 보고 카세트 테이프를 사게 되었다. 그 곡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나로서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또 다른 세분된 표현은 아직 불가능했다. 거의 사흘 밤낮을 [열정]을 틀어놓고 살 정도로 그것은 그렇게 좋았다.(227쪽)"
'무슨 곡인지도 모르면서 베토벤이라는 이름만 보고 카세트 테이프를 사게 될' 정도로 그녀는 이미 서양음악사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그 후로도 그녀는 그녀의 고백대로 '하루 종일' 클래식 FM방송을 들으면서 성장해 온 것이다. 물론 전통음악이 나오는 시간에는 라디오를 꺼놓고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여러 왜곡된 교육과정을 통해서 서양 음악일색으로 길들여지고 성장한 자신의 인생사를 되짚어보지 않고, 단지 "서양 음악에 대한 나의 취향은 거의 선천적 본성으로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고 단정짓는 그녀의 태도는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의 책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고백'이 아니라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2. 취향의 강요는 있을 수 없다.
이 책의 첫 머리 소제목인 '취향의 강요는 있을 수 없다'는 명제에 대해서 나도 전적으로 찬성하며 어느 누구도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개인적 취향이라는 것은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선천적 본성'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부분은 '후천적으로 길들여 진 것'이고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지닌 외계 세계에 대한 각종 지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지식사회학의 기본적인 명제이고, 이것을 지식사회학에서는 '지식의 존재구속성'이라고 부른다. 즉, 인간에게 형성된 지식은 사회적 환경에 구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류의 스승이라는 공자나 플라톤 등도 그들이 살던 시대에 당연시되던 노예제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고, 당연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이런 음악에 대한 개인적 취향이, 후천적이고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선천적 본성'의 문제로만 돌리고 있다. "서양 음악에 대한 나의 취향은 거의 선천적 본성으로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논리는 과연 정당한가.
전통 음악을 좋아하든 서양 음악을 좋아하든, 이것은 분명히 개인의 취향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개인의 취향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강요될 수도 없고 강요되어서도 안된다. 필자도 이런 명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개인의 취향을 강요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 그녀가 살아왔던 시대를 한 번 되돌아보자. 그녀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개인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제도교육을 통해서 서양음악만을 가르쳐온 우리의 교육과정은 개인의 취향과 상관없이 특정 음악을 강요한 것은 아닌가? 그녀가 말하는 개인의 '선천적 본능'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수 있었는가? 그녀는 왜 이런 왜곡된 음악교육과정에 대해서는 함구하는가?
또, 그녀의 말처럼 음악에 대한 취향이 '선천적 본능'이라면 각종 방송매체에서 서양음악 일변도로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개인의 취향을 무시한 강요가 아닌가? 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는가?
<국악방송>이 방송을 시작한 것이 2001년 3월이었다. (서울지역: 2001. 3. 2일, 남원일원: 2001. 6. 1일 ). 2001년 이전에는 서양 클래식을 좋아하는 그녀가 오후 5 시와 오전 11시 그리고 밤 12를 제외하고 하루종일 클래식을 들을 수 있었던데 반해서,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전통음악을 들을 수도 없었다.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루종일 들을 수 있는 <국악방송>도 없는 상황에서 오후 5시와 오전 11시 그리고 밤 12시를 제외하고 서양클래식을 하루종일 들을 수 있었다던 그 <클래식 FM 방송>은 개인의 취향을 무시한 문화적 폭력이 아니었는가? 그녀는 왜 이런 개인적 취향을 강요하는 이런 구조적 모순과 권력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가?
하루 종일 20시간 이상 방송하는 각종 방송매체에서 2-3간 편성된 국악 방송시간이 '암흑'과 같았다면, 나머지 17-18시간이 암흑같았던 사람들은 없었겠는가? 우리의 방송매체가 개인의 취향과 상관없이 서구음악 일변도로 편성된 것은 개인의 자유와 취향을 무시한 강제가 아닌가?
그녀의 논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다고 보인다. 그녀는 개인의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개인의 취향은 이미 왜곡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통해서 서구음악 일변도의 취향으로 길들여져 있고, 사회구조적으로 서양음악일색으로 일방적으로 강요된 상태에서 형성된 취향이라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적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문화적 폭력'일 뿐이다.
그녀는 "서양 음악이냐 한국 전통 음악이냐 하는 것도 순수한 선택의 문제다. 한국인이기에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한국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일은 부당하다."(42쪽)고 말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한국인이기에 무조건 한국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글을 본적도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건 그것은 순수한 선택의 문제이고 개인의 취향의 문제인데, 그것이 순수한 선택의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선택지에 해당하는 전통음악이나 서양음악에 대한 정보나 지식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정 음악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듣고 배운 상태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순수한 선택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아래와 같은 언급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정리해 보자.
(인용문)
"취향에 대한 의무는 있을 수 없다. 즉, 어떤 꽃을 누구나 좋아해야 한다든가 어떤 옷을 좋아해야 하며 다른 옷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식의 논리는 분명히 부당하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기에 반드시 한국 음악을 좋아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부당하다. 취향에의 의무는 있을 수 없다. 어떤 음악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속해 있다.(43쪽)"
그녀의 말대로 "어떤 음악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속해 있다"는 말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언제 어디에서부터 위협받는가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어떤 음악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속해 있다"는 지당한 말씀과는 달리 우리는 의무적으로 배우는 제도교육과정에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완전히 침해당해 온지 오래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통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교육받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에 초중고등학교 제도교육에서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을 골고루 배운 상태에서,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서양음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전통음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따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국악방송을 전국방송으로 확대하라
"어떤 음악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속해 있다"는 명제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선택을 방해하는 여러 구조적인 권력들이 제거되어야한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논리가 정당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우리의 현실문화의 여러 구조적 권력장치가 해체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개인의 취향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것들이 선결되어야만 한다.
첫째, 개인의 취향이 어느 한 방향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제도교육에서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대등하게 가르쳐져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에 대해 모두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거나,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각각 따로 모셔서, 음악교육을 이원화하여야한다.
둘째, 현재의 각종 방송매체의 음악은 서양음악일색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선택권을 구조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현 단계에서는 <국악방송>을 전국방송으로 확대 개편하여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책의 저자는 20시간이 넘는 방송 중에서 2-3시간 편성된 국악시간이 '암흑'과 같았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서양음악 일변도의 17-18시간이 '암흑'과 같은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이런 불평등을 극복하고 개인의 취향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국악방송>의 전국방송으로의 확대 개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셌째, 장기적으로는 일반 방송에서는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대등하게 방송하게 하고, <국악방송>, <서양클래식방송> 등은 모두 다튜멘터리 방송인 <Q채널>이나 <히스토리 방송> <디스커버리채널> 등과 같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자유롭게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전문방송으로 편성되어야 한다.
이런 세 가지의 조건들이 선행될 때에만이, 어떤 음악을 들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글자그대로 개인의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왜곡되고 종속적인 음악문화 환경을 도외시한 상태에서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은 이미 진정한 의미의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문화권력의 산물일 뿐이다.
현재의 <국악방송>은 왜곡된 문화상황에서 서구음악 일색의 음악문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국악방송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기존 방송들이 서구음악 일색으로 왜곡되게 편성되어 있지 않고 국악과 서양음악이 편성과정에서부터 안배되어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었다면, 굳이 <국악방송>이라는 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색내기용으로 허가된 것처럼 서울과 남원 일대에서만 들리는 <국악방송>은 그 존재이유도 불분명하고 방송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우리의 문화적 현실을 감안할 때 현재의 상태에서는 <국악방송>이 하루빨리 전국방송으로 확대 개편되어야한다.
4.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 개개인 속으로 강력한 힘으로 침투'하는 전통 문화(?)
그녀의 책 한 곳에서, 전통문화라는 것이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서 개개인 속으로 강력하게 침투해 들어온다고 강변하면서, 이런 것들은 개개인이 의식적으로 머리 청소를 해야한다고 역설한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많이 있다.
(인용문)
"전통 문화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 개개인 속으로 강력한 힘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그리고 제작자 미상의 것일수록, 앝은 것일수록 더욱더 독재적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이 의식적으로 머리 청소를 해야 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회복해야 한다.(47쪽)"
위의 인용문에서 이 책의 저자는 "전통 문화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 개개인 속으로 강력한 힘으로 침투해 들어온다."고 보고 이렇게 강제적으로 들어와 머리 속에 박혀있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머리 청소'를 해서 '진정한 자기 자신'를 회복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전통 문화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뇌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과연 우리 나라에서 '전통 문화'라는 것이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서 개개인 속으로 강력한 힘으로 '침투'해 들어가고, 많은 사람들을 전통문화에 세뇌시키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서' 개개인 속으로 강력한 힘으로 '침투'하고 있는 것은 전통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서구 문화이고, 전통 음악이 아니라 서구 음악이다.
우리 나라를 포함한 제3세계에서, 그녀가 말하듯이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 형성된 '서구중심주의' 혹은 '서구의 눈으로 본 왜곡된 동양관'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부른다. 이런 문화적 이데올로기이자 편견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여러 저서를 비롯하여 국내에서도 많은 저술들이 발표되었고, 필자도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서울: 소나무, 1997)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서구의 문화에 하루 하루 동화되어가고, 공영방송에서 조차도 가뭄에 콩나듯이 편성된 전통 음악이 싫어서 라디오를 꺼버리는 철저히 서양 음악 일색의 우리 문화상황에서, 정말 전통 문화라는 것이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서 개개인 속으로 강력한 힘으로 침투'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이런 그녀의 언급은 한국의 현실 상황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우리의 문화 상황에서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세뇌되는 것은 서구중심주의이고, '의식적으로 머리 청소'를 해서 버릴 것은 서구중심주의이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① 대부분 서양음악 일색의 교육을 받았고, ② 이런 교육과정을 거처서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서양음악에 길들여졌으며, ③ 서양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이 마치 나의 개인의 '선천적 본능'인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이들과는 달리 그나마 이런 현실 상황에서도 전통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동적 무의식적 전달과정을 통해 개개인 속으로 강력한 힘으로 침투해 들어온' 서양 음악의 홍수 속에서 개인적으로 강습을 받거나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서 곧, '개개인이 의식적으로 머리 청소를 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회복'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5. 글을 맺으며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고백}의 저자와 같은 왜곡된 음악관을 지닌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진정한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순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이 문제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맺는다.
첫째, 음악에 대한 취향이 형성과정에서부터 정상적으로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개인적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도교육에서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동등하게 가르쳐져야한다.
둘째, 올 3월 고등학교 2학년부터 시행되는 ① 음악과목의 완전한 개인 선택과목으로으 전락 문제와 ② 대입 내신성적에서의 예체능과목의 배제 문제는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그동안 5차 6차 교육과정을 거처서 전통음악교육의 비중이 조금씩 높아져왔고, 7차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서 전통음악이 서양음악과 대등하게 가르치게 바뀌었다. 그러나 올 3월부터 시행되는 7차 교육과정에서처럼 개인 선택과목으로 전락하고 대입 내신성적에서도 제외될 경우, 현실적으로 입시 위주로 편성된 고등학교 학습체계에서 예체능 과목을 선택하려는 사람들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교육부에서 인수위에 보고한 내용이 그대로 집행될 경우, ① 7차 교육과정을 통해서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동등하게 가르쳐져서 그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음악교육은 위기에 직면할 것이고, ② 그렇게 되면 서양음악 일색의 현재의 왜곡되고 종속적인 음악문화는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셋째, 현재 '서울 경기 지역'(FM 99.1 MHz) 와 '남원 일대'(FM 95.9 MHz)에서만 수신이 가능한 어정쩡한 상태의 <국악방송>을 하루빨리 전국방송으로 확대 개편하여,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 가능하게 해야한다.
이런 선결 조건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후 다섯 시만 되면 하루 종일 듣던 클래식 FM 방송을 어김없이 꺼버리는' 음악 편식적인 지식인도 재생산 될 것이고, '아무리 마음을 넓히고 들어보려고 해도 한국 전통 음악은 귀에 거슬린다'는 지식인들도 재생산 될 것이다.
이런 지식인들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면 왜곡되고 종속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형성된 음악적 취향을 마치 자신의 개인적인 '선천적 본능'인 냥 이야기하고, 왜곡된 사회구조적 권력 아래에서 형성된 취향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서양 음악이냐 한국 전통 음악이냐 하는 것은 순수한 선택의 문제'라고 외치는 '편향된 지식인' '허울좋은 자유주의자'가 양산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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