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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의 시사문화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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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12-01-11 13:17:12  (조회수: 2579)
이 름    우실하
Homepage    http://www.gaonnuri.co.kr
제 목    [연합뉴스] [경향신문] 中CCTV "발해, 中지방정권" 또 주장 (2012.1.11)


* [연합뉴스]를 받아서 [경향신문]에도 거의 같은 내용으로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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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CCTV "발해, 中지방정권" 또 주장
"中동북, 중국 고대사에 편입하려는 역사수정 의도"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비롯한 일련의 역사 수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고대 왕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펴온 가운데 관영 중국중앙(CC)TV가 또다시 발해를 중국으로부터 책봉 받은 말갈족 정권이라고 주장, 논란이 일고 있다.

CCTV는 지난해 11월 12일부터 12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6부작 다큐멘터리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 명칭)'을 방영하면서 발해의 건국 주체를 중국 동북지역에 살던 소수민족인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소개했다.

CCTV는 다큐멘터리 제4부 '산해상망((山海相望)' 편에서 "당나라 현종이 713년 진국(震國·발해의 다른 이름)에 사신을 보내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員外大將軍) 발해군왕(渤海君王) 영홀한주도독(領忽汗州都督)'으로 책봉했다고 주장했다.

또 발해와 당나라의 주요 교역 루트였던 백두산 자락 압록강 상류의 린장(臨江)에서 랴오둥(遼東)반도의 뤼순(旅順)을 거쳐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도달하는 구간을 발해의 조공 루트로 소개했다.

CCTV는 백두산을 만주족 등 중국 소수민족의 영산(靈山)이라고 주장, 백두산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이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음을 부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CCTV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고 해서 이걸 반드시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어떤 방침이 정해진 것은 없으며,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CCTV의 이번 보도는 1996년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시작으로 계속되고 있는 중국 역사 수정작업의 하나로 해석된다.

중국은 하상주단대공정을 통해 전설 속의 국가였던 하나라와 상나라를 중국의 정사(正史)에 편입시킨 데 이어 2002-2007년 이뤄진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했다.

2001년 제작돼 지금도 쓰이는 연변(延邊) 조선족의 7학년(중학교 1학년) '중국력사' 교과서에는 "7세기 말 말갈족의 한 갈래인 속말(粟末) 말갈이 여러 종족을 통일, 정권을 수립했다. 후에 당 현종이 이곳에 주를 설립하고 그들의 수령을 도독으로 삼았으며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은 2009년 4월에는 만리장성의 길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천500㎞ 더 긴 8천851.8㎞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하면서 만리장성 동쪽 끝을 중국 고고학계의 정설이었던 허베이(河北)성 산해관(山海關)에서 북한 접경의 단둥(丹東)에 자리 잡은 고구려의 박작성(중국 명칭 후<虎>산성)으로 대폭 연장했다.

후산성 증·개축 이전에는 이 성을 고구려 유적으로 인정했던 중국은 그해 9월 박작성에 '萬里長城 東端 起點'(만리장성 동단 기점)'이라는 대형 표지판까지 내걸었다.

이듬해에는 고구려의 발흥지인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에서 만리장성 유적이 발굴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린성은 국가문물국의 지원을 받아 퉁화를 비롯한 쓰핑(四平)과 창춘(長春), 연변(延邊) 등을 '만리장성 보호사업' 대상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중국이 만리장성을 동쪽으로 확장함으로써 고구려와 발해 영토였던 중국 동북일대가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음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국내 역사학자들이 분석했다.

중국의 공인 역사서를 발행하는 중화서국(中華書局)은 2015년 완성을 목표로 중국 정사 기록인 25사(25史·전설의 황제(黃帝)부터 명(明)나라까지의 정사인 24사와 청나라 역사인 청사고(淸史稿)를 합친 중국의 공인 정사)를 전면 수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상고사와 청나라 역사를 중화민족의 역사에 편입하는 것이 목적인 이 역사 수정 작업을 통해 중국이 과거에는 오랑캐 문화로 터부시했으나 황하(黃河)문명보다 1천여 년 앞섰던 것으로 판명된 요하(중국 명칭 랴오허<遼河>)문명을 중국 문명의 시원으로 삼으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요하 문명에서 발원한 한(韓)민족의 선조도 중국의 시조인 황제의 후예가 되는 셈이다.

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국내 역사계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동북공정에만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의 상고사 재편 작업"이라며 "요하 문명이 중화민족의 역사에 편입되면 요하 문명에서 발원한 웅녀족과 고조선의 단군, 예맥족, 부여족, 고구려의 주몽과 해모수 등 우리 민족의 선조가 자연스럽게 황제의 후예가 된다"고 주장했다.

우 교수는 "이렇게 되면 중국 동북지역에 기반을 둔 우리 민족의 상고사가 통째로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기 때문에 이후의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는 반박의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며 "중국의 상고사 수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p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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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CCTV “발해, 中지방정권” 또 주장디지털뉴스팀 글자크기ll l
[경향신문] 2012.1.12
   디지털뉴스팀  입력 : 2012-01-11 19:42:37ㅣ수정 : 2012-01-11 19:42:37

中 CCTV “발해, 中지방정권” 또 주장중국중앙(CC)TV가 최근 발해를 중국으로부터 책봉 받은 말갈족 정권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비롯한 일련의 역사 수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고대 왕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펴왔다. CCTV는 지난해 11월12일부터 12월17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6부작 다큐멘터리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 명칭)’을 방영하면서 발해의 건국 주체를 중국 동북지역에 살던 소수민족인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소개했다.

CCTV는 다큐멘터리 제4부 ‘산해상망((山海相望)’ 편에서 “당나라 현종이 713년 진국(震國·발해의 다른 이름)에 사신을 보내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員外大將軍) 발해군왕(渤海君王) 영홀한주도독(領忽汗州都督)’으로 책봉했다”고 주장했다. 또 발해와 당나라의 주요 교역 루트였던 백두산 자락 압록강 상류의 린장에서 랴오둥반도의 뤼순을 거쳐 당나라 수도 장안에 도달하는 구간을 발해의 조공 루트로 소개했다. CCTV는 백두산을 만주족 등 중국 소수민족의 영산이라고 주장, 백두산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이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음을 부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CCTV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고 해서 이걸 반드시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어떤 방침이 정해진 것은 없으며,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CCTV의 이번 보도는 1996년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시작으로 계속되고 있는 중국 역사 수정작업의 하나로 해석된다. 중국은 하상주단대공정을 통해 전설 속의 국가였던 하나라와 상나라를 중국의 정사(正史)에 편입시킨 데 이어 2002-2007년 이뤄진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했다.


2001년 제작돼 지금도 쓰이는 연변 조선족의 7학년(중학교 1학년) ‘중국력사’ 교과서에는 “7세기 말 말갈족의 한 갈래인 속말(粟末) 말갈이 여러 종족을 통일, 정권을 수립했다. 후에 당 현종이 이곳에 주를 설립하고 그들의 수령을 도독으로 삼았으며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은 2009년 4월에는 만리장성의 길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500㎞ 더 긴 8851.8㎞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하면서 만리장성 동쪽 끝을 중국 고고학계의 정설이었던 허베이성 산해관에서 북한 접경의 단둥(丹東)에 자리 잡은 고구려의 박작성(중국 명칭 후산성)으로 대폭 연장했다. 후산성 증·개축 이전에는 이 성을 고구려 유적으로 인정했던 중국은 그해 9월 박작성에 ‘萬里長城 東端 起點’(만리장성 동단 기점)이라는 대형 표지판까지 내걸었다.

이듬해에는 고구려의 발흥지인 지린성 퉁화에서 만리장성 유적이 발굴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린성은 국가문물국의 지원을 받아 퉁화를 비롯한 쓰핑과 창춘, 연변 등을 ’만리장성 보호사업‘ 대상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중국이 만리장성을 동쪽으로 확장함으로써 고구려와 발해 영토였던 중국 동북일대가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음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국내 역사학자들이 분석했다.

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국내 역사계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동북공정에만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의 상고사 재편작업”이라며 “요하 문명이 중화민족의 역사에 편입되면 요하 문명에서 발원한 웅녀족과 고조선의 단군, 예맥족, 부여족, 고구려의 주몽과 해모수 등 우리 민족의 선조가 자연스럽게 황제의 후예가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공인 역사서를 발행하는 중화서국은 2015년 완성을 목표로 중국 정사 기록인 25사(25史·전설의 황제(黃帝)부터 명(明)나라까지의 정사인 24사와청나라 역사인 청사고(淸史稿)를 합친 중국의 공인 정사)를 전면 수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상고사와 청나라 역사를 중화민족의 역사에 편입하는 것이 목적인 이 역사 수정작업을 통해 중국이 과거에는 오랑캐 문화로 터부시했으나 황하문명보다 1000여 년 앞섰던 것으로 판명된 요하(중국 명칭 랴오허<遼河>)문명을 중국 문명의 시원으로 삼으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요하 문명에서 발원한 한(韓)민족의 선조도 중국의 시조인 황제의 후예가 되는 셈이다.

우 교수는 “이렇게 되면 중국 동북지역에 기반을 둔 우리 민족의 상고사가 통째로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기 때문에 이후의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는 반박의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며 “중국의 상고사 수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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