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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의 시사문화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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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12-10-31 11:40:36  (조회수: 2876)
이 름    우실하
Homepage    http://www.gaonnuri.co.kr
제 목    우실하,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에 대한 어느 교원대생의 독후감 (2012.6.21)


*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진 인상적인 독후감을 찾아 올립니다. 교원대 졸업반 학생이 국악개론 수업의 레포트로 제출한 것 같은데 이름을 알 수는 없습니다. 저의 책을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 준 사람이 있다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블로그에 올려져 있기에 소개합니다. 조만간 임용고시가 있다고 썼던데, 임용고시는 잘 치르셨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아래의 독후감을 쓴 사람을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제게 연락주세요. 주소를 알면 독후감을 쓴 분께 제가 새로 쓴  [3수 분화의 세계관] 책을 선물로 보내주고 싶습니다. 독후감의 내용을 보건데  [3수 분화의 세계관] 책이 그녀에게도 무척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실하 올림-------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 우실하  (2012/06/21 19:35)

http://blog.naver.com/no3patak/130140919339

  책은 첫머리에 어릴 적 한 번씩은 다들 들어봤을 법한 예시를 들며 음악 교육의 현실에 대하여 쉬우면서도 성찰적인 접근을 하게 한다. ‘피아노를 배울래, 바이올린을 배울래?’ 나 역시도 음악을 시키고 싶어 하는 어머니 덕분에 이러한 질문을 들었고, 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가지를 모두 선택하였다. 음악을 시키려면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바이올린 대신, 가야금을 배울래? 하는 질문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을뿐더러 우리 동기 중에 가야금을 배웠던 소이를 다들 신기하게만 생각하였다. 물론 이는 십여년 전 나의 어릴 적 이야기이다. 지금은 조카의 가정통신문만 보아도 국악 교육이 많이 활성화되고 있구나 느끼곤 한다. 나 어릴 적의 방과 후 음악 수업은 바이올린이나 플륫이 다였는데, 지금은 가야금, 사물놀이 등 국악 수업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나는 7차 교육과정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그나마 장구의 여러 장단과 단소 등의 악기를 배웠고, 멀티미디어가 발달해 스스로 찾기 어려웠던 영상이나 자료들을 수업시간에 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학교 시절에는 운 좋게도 국악을 전공하신 선생님이 학교에 계셔 학교의 날뫼북춤반도 운영하고, 태평소도 자주 부는 등 여러 가지 국악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국악기들에 대한 생소함도 덜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내가 자라왔을 때보다 국악 교육이 더 열악했을 것이다. 6차 교육과정에서부터 국악이 다소 향상되긴 하였지만, 이 전의 교과서만 보더라도 거의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한 민요들의 가창활동이 대부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책에서의 재미난 또 하나의 이야기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고백’의 에피소드가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쓴이는 이런 상황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음악에 대한 취향이 형성 과정에서부터 정상적으로 형성되어야 하고, 그렇게 형성된 개인적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향된 형성을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바로 ‘교육’을 꼽고 있다. 특히 교육과정에서의 문제 제기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7차 교육과정에 의거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다. 지금은 미래형 교육과정 때문에 중학교까지도 음악이 학기, 학년 선택 과목이 되어 버렸지만 이미 이전부터 고등학교에서는 음악이 선택과목이었다. 따라서 음악을 전혀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이는 글쓴이의 주장대로 서양 음악 일색인 지금의 왜곡되고 종속적인 음악문화의 재생산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제 3장에서 대학 음악교육과정을 논할 때 다시 지적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된다고 생각하였던 단어는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의 인식 지평에서 우리 동양의 특이성을 비춰 보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절, 동양이나 제3세계의 문화가 서구의 문화적 문법으로는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인들은 그 문화 앞에 비합리적, 비과학적, 비이성적, 신비적, 원시적, 미신적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를 포함한 제3세계는 식민지 지배 과정을 통해 고유의 인식 보다는 서구 중심적인 인식으로 전통을 비합리적, 비과학적이라는 듯이 바라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교육학 인터넷 강의를 들었을 때도 한 번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물론 강사가 우스갯소리로 개념 이해를 위해 과장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지만, 라면 보다는 스파게티, 빈대떡 보다는 피자를 먹는 것이 더 문화스럽지 않냐며 대답을 강요했었다. 물론 이런 일에 모두들 웃으며 지나갔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이것이 정말 서도동기론인 것인가, 하며 반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왜곡된 영향에 의해서 형성된 인식틀은 진정한 이해를 유발시키는 인식틀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는 이 책에서 꾸준히 동도동기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등교사 임용을 보기 때문에 교육과정하면 대부분 7차, 2007 개정 등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 대학의 교육과정을 이야기 할 때, 아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학의 교육과정이구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예고를 나왔고 음대 피아노과에 다녔었다. 그래서 음대에서 개설되는 교과목이나 수업진행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학 교육과정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음대 신입생일 시절을 비춰보면, 글쓴이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전통 사유 체계에 대해 거의 무지했으며, 음양, 오행, 10천간, 12지지 등 가장 초보적인 개념조차도 몰랐다. 특히 거의 예중‧예고를 나온 친구들이라 대부분이 어렸을 적부터 서양음악만을 편식했다. 우리도 모르게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양 철학이나 사상은 미신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고, 국악도 결국 대학에 와서도 찾아 접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는 서울대, 이화여대, 한양대의 교육과정을 예시로 들고 있다. 국악과가 개설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악 과목은 전공에서도 현저히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과목 선택의 여지도 없을뿐더러 전공선택 영역에 들어가 있으니 작정하지 않는 이상 듣기도 힘든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교육과정을 바꾸면 전반적인 상황이 재생산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은 교육과정의 문제로 학생들이 듣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듯 했다. 모든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는 전제 하에 가정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수업에 들어가 보면 다르다. 열정이 있어서 라기 보다 어렸을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음대에 진학한 학생들도 생각보다 많고, 음악에 대한 ‘의무감’만 강한 학생도 많다. 그래서 학생들이 실기에는 죽자 사자 달려들지만, 기본적인 이론수업에 있어서는 열심의 정도와 수준의 편차가 심하다. 이것은 과내에서의 소규모 수업이라도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는 피아노과와 성악과, 피아노과와 작곡과를 합해 수업하는 경우도 많으며 가장 큰 경우에는 피아노과, 성악과, 작곡과 모두 듣는 개론수업도 꽤 있다. 무슨 수업이든 간에, 물론 교수의 재량에 따라 집중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가운데서 열심히 하는 학생은 소수이다. 즉, 서양 음악에 대한 수업도 100%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수업이 많으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수업이 많고 적고가 글쓴이의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종합대학에서는 소문을 듣고 수업을 들을까 말까 고민을 한다. 수업이 아무리 많이 열려도 강의 자체가 별로이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국악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오리엔탈리즘 때문이라도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악 수업을 늘린다는 것은 교육과정의 중요성보다, 한 과목을 열더라도 집중해서 좋은 교수나 강사를 선별해 흥미 있으면서도 제대로 수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서양음악사의 표기에서 우리학교가 등장해 반가웠고 표기도 올바르게 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기에서는 음악이라는 용어를 서양음악으로 해석하고 서양 음악이 아닌 것은 동양이나 한국 등의 형용사를 붙여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에 젖은 발상법이라 하고 있다. 우리학교는 문제가 없지만, 목원대나 공주대 같이 학부에 음악교육과가 있는 경우에도 ‘서양음악사’를 ‘음악사’의 유형으로 잘못 표기해 놓았다는 것에 실망했다.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책의 제목인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에 맞게 4장부터는 우리 전통음악을 이해하는 정당한 인식틀인 동양 철학의 여러 개념들을 이야기 한다. 우선 자연의 조화를 철학적 논리로 드러내는 것이 동양 철학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미신이 아닌, 고대부터 치밀하게 이루어 온 사상적 요소인 것이다. 이는 5음 12율 뿐 아니라 악기의 제조법이나 장단 등 음악의 모든 영역이 이러한 요소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음악에 집중하기 전에 이 사상적 요소들을 중국의 역사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자꾸 중국 이야기만 나와서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것은 8장을 읽고서 이해가 되었다. 이 장부터 이야기 할 여러 요소들이 중국 전통 음악 이론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국의 전통 음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들이었다.

   12율은 『여씨 춘추』「중하기」와 『한서』「율력지」에 등장하는 데, 봉황의 울음소리를 듣고 만들었다는 등의 신화적인 요소가 있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음악의 기원 신화를 기록하면서부터 12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5음 12율 체계를 산출하는 수리 체계는 상나라 때 이미 갖춰져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B.C. 1600~B.C. 1046). 이는 상나라에 10천간 12지지와 60간지를 사용했으며, 윤달까지 갖춘 정밀한 역법이 있었던 점과, 황종척을 만들 때 사용된 기준인 서(기장)는 상나라 사람들의 주식이었던 점, 3과 3의 배수인 9가 상징적으로 중요시 되어 이 체계를 바탕으로 한 황종척, 황종수, 삼분손익법 등의 논리가 발전되었을 가능성, 또 편종류 악기로 분류되는 은요가 3개 1조로 발굴되어 5음음계 구조가 확립되었을 가능성, 성수 3을 중시하는 전통 등을 예로 들어 알 수 있다. 고대 동양 음악에서 척도의 기본은 이 황종척에 있었고, 이 황종척을 삼분손익법에 응용해 동양 음악의 기본인 5음 12율을 산출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기원전부터 자연에 부합한 음악의 원리들이 세워졌으며, 이가 아직까지도 계승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음은 오행의 논리에 배당되어 각각 동양의 철학적인 상징들과 연결되고, 12율은 12지지와 연결되어 1년 12달에 배당된다. 12율은 기본적으로 천지자연의 기의 흐름을 의미한다.이를 음양론과 삼통론에 입각해 설명하고 있으며, 12율 가운데 황종에서부터 삼분손익법에 대해 차례대로 산출된 첫 번째~세 번째 율인 황종, 임종, 태주가 바로 천통, 지통, 인통에 해당된다. 이는 다시 12지지에서 자, 축, 인에 배당되며 여기서의 삼통은 삼재, 삼정과도 이어져 있다. 국악에 관련된 개론서들을 펴면 기본이 되는 율명, 삼분손익법이 항상 처음에 등장한다. 겨울방학 때 여러 가지 개론서들을 항상 처음 부분만 기세 좋게 읽어나갔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아주 익숙하다. 하지만 이 삼분손익법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왜 황종을 기본으로 하였는지, 왜 12율인지의 바탕을 이제야 올바로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그냥 보이는 대로 그렇구나 외우기만 했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찾아봐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항상 우리음악의 원리에 대해서는 궁금했지만 그러려니 넘어가기만 했는데, 그런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정말 필요했던 것 같아 기쁘다.

  다음으로는 동양 음악과 3수 분화의 논리 체계에 대하여 북방 샤머니즘, 몽골 민속의 설화, 삼계우주설, 삼계구천설, 우주수, 삼혼신앙, 삼혼일체설 등을 예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도 어렵고 심오해 아직 잘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다시 한 번 찾아봐야 하겠다. 하지만 3이 우주원리에 맞게 분화가 되고, 지금까지도 우리의 전통 속에 뿌리박힌 철학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양태극 대신에 삼태극이나 삼원태극의 문양을 많이 사용하였다. 지금의 태극기를 떠올리면 분명 많이 사용되는 것은 음양태극인데? 하며 의아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3수 분화의 세계관은 언급했다시피 북방 샤머니즘의 세계관이었고, 이를 계승한 것이 도가 계열이었으며, 후의 도교도 이런 3·1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수의 전개 원리에 입각한 것이 바로 한국의 전통 사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교가 발전하며 이기사상에 걸맞는 음양론이 따라 발전하게 되었고, 음양은 다시 오행과 맞물려 음양오행론이 받아들여졌다. 글쓴이는 이 삼재론이 역사상과 음양오행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한국 전통 문화의 구성 원리라고 보고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은 대부분이 3박 계통의 음악이며, 이 뿐 아니라 무용, 무예에서도 3수 분화의 흔적들이 강하게 남아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장단의 기본형으로 불리는 12박 1장단은 3소박으로 구성된 3박을 4번 반복하는 것으로, 이것은 3달을 한 단위로 하여 춘하추동 4시를 도는 1년 12달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약간 소름이 돋았다. 이런 12박 장단들은 대개 민속악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그럼 이 모든 것이 농경생활을 하는 우리의 일상과 연관되어 있었던 것인가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3수 분화, 음양론, 오행 이러한 철학적인 배경에 대해 읽을 때도 신기하기는 하였지만, 이처럼 와 닿는 설명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 하나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판소리 고법에서의 기경결해 논리는 춘하추동의 흐름의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9박에서 강하게 북을 치며 맺고 뒤의 세 박을 푸는 것은 가을의 결실을 맺고 겨울의 휴지기로 들어간다는 상징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아... 과제에다가 이런 말을 쓰기는 좀 그렇지만 정말 무슨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는 것같이 소름이 돋고 모든 의문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왜 나는 이때까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때까지 농악이나 제례악 같이 천지신명과 연관되는 음악은 하늘을 상징하고, 신을 모시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음악이 천지신명 우주만상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음악은 서양 음악처럼 귀족에게 돈을 받고 의뢰해서 만든 작품이나, 자기가 봉직하는 교회를 위한, 또 여가를 위한 다분한 목적이 있는 음악이 아닌, 진실로 우리의 삶에 연관되어 함께 돌아가는 이러한 자연스러움 그 자체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이런 음악이 우리의 본래 정서에 부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우리의 정서에 오리엔탈리즘을 입히니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고백’같은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더불어 성수 3의 의미는 음악의 곳곳에 드러난다. 정악합주에서 시작과 끝에 박을 3번 연주하는 것과,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에서 축을 3번 치며 음악을 시작하고, 어를 3번 연주하며 음악을 끝내는 것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귀에 바로 들리는 특징 외에도 우리의 중심음 구조에서도 3이 나타난다. 기본음 구조의 서양음악과는 달리 우리는 3음음계, 5음음계의 한 가운데 있는 중심음을 ‘본청’으로 삼아 그 위의 상청과 그 아래의 하청으로 인식하는 중심음 구조로 되어있다. 판소리에서도 본청, 상청, 하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일반적으로 민요는 모두 이런 중심음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특징인 선비들이 즐겼던 가곡, 가사, 시조의 기보법인 선율선보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선율선보는 가락선보라고 하여 교과서에도 많이 실리고 있는 추세다. 나도 학교의 모의수업 경진대회에 나갔을 때 가락선보를 활용하였으며, 국악 교수법 시간에 많은 학생들이 가락선보를 언급하였다. 이를 학교 현장에 응용하여 중심음 구조를 설명하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어 중심음 구조에서의 농현 기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흥미로웠다. 글쓴이는 중심음을 두고 위아래로 음을 흔들며 오르내리는 농현을 삼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석인 것 같고 나도 이 해석에 설득당한 것 같다.

  9장에서는 가악에서의 모음분해 현상을 훈민정음의 창제원리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있다. 모음분해에 대해서는 2학년 1학기 전통음악가창론 시간에 모음을 풀어서 부르기는 하였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던 것 같다. 이것도 물론 찾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기는 하겠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훈민정음은 하나의 낱글자가 천지인 삼재론에 입각해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초성과 종성을 이루는 자음은 오행론에 입각해서 만들고, 중성인 모음은 천지인 삼재론에 입각한 기본 모음 · , ㅡ, ㅣ 를 창안한 다음 역의 기본 도상인 하도의 원리에 따라 조합한 것이다. 이를 보면 훈민정음이 철저하게 역, 음양론, 오행론, 천지인 삼재론 등이 결합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모음 분해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리들을 염두에 두었으며, 그 결과 모음 분해의 의문점을 풀 수 있었다. 모음 분해에 있어서의 의문점은 ㅛ, ㅑ, ㅠ, ㅕ의 복모음이 분해되지 않는가 하는 것과, 단모음임에도 불구하고 ㅐ, ㅔ, ㅚ는 왜 굳이 분해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에서 정음에 해당되는 모음과 그렇지 않은 모음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모음에서 정음은 제자 원리에 의해 오방, 오행, 오음, 오장 등에 배당되어 동양 철학의 여러 상징 체계와 연결되어 있다. 이 정음 11자를 제외한 모음들은 아무런 상징성이 없는 단지 조합된 글자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음은 절대 분리할 수 없었으며, 정음이 아닌 ㅐ, ㅔ, ㅚ는 정음으로 ㅏ+ㅣ, ㅓ+ㅣ, ㅗ+ㅣ분리하여 발음해 이러한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눈에 띄는 3수 체계나 음양오행에 관한 요소들이 아니더라도, 모음 분해와 같이 숨어있는 요소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장단만큼의 충격은 없었지만, 이 장도 의미 있고 깊이 이해되는 유익한 장이었던 것 같다.

  이어 문화 시장 개방의 대응 과제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앞의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중복 된 줄 모르고 출판하지는 않았을 텐데,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인 부분도 많아 그냥 글쓴이가 자신의 논문을 종합해 놓은 책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복 된 줄 모르고 출판한 것일까?


글쓴이는 서론에서부터 강조했던 이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는 과제에 대하여 ‘교육’ 이외에는 길이 없다고 하고 있다. 또 지금이라도 2세 교육을 위한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뜬금없이 대학별 교육과정이 등장했던 이유가 여기서 밝혀지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에 중점을 두는 책을 읽게 되어 나는 기쁘다. 책을 읽으며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생각을 바꾸어야 할 부분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실습을 나가서 국악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현직 선생님들의 의식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들이 시험기간일 때 마침 중학교로 첫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시험문제에서 국악의 비중이 1/10도 채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알 수 있었고, 두 번째 실습 때는 오돌또기 등의 국악곡을 아주 신나게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아이들이 가창 수업을 하는 것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늴리리야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리코더로 불라고 지도하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이러한 국악 교육의 실태는 글쓴이도 수없이 보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첫 째,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국악 50%의 음악 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각 학교에 국악 전담 음악교사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 둘 째, 장기적으로 음악 교사를 임용할 때 국악과 양악을 겸비한 이들을 임용해야 한다는 것. 셋 째, 대학에서 서양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국악의 기초가 되는 장구 장단을 다룰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 넷 째, 각 시도별로 작은 규모일지라도 하나씩 국악단을 꾸리게 하는 것, 이 네 가지이다.

  나는 이 방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러한 일들을 읽고 겪을수록 나에게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중학교 때 나는 국악을 전공한 선생님을 만나 다른 학교 학생들 보다 훨씬 국악에 대해 알게 되었었다. 이를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음악 교사가 될 나는 지금 읽은 이 책을 두고두고 생각하며 내가 느낀 점들을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실습 때 만난 선생님들 같은 경우는 절대 있어서는 안될 것이고 또한 다른 곳에서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앞장서서 바르게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언제 다읽지 걱정하기도 했었고, 내용을 보아하니 음양, 삼태극 이런 옛날 사상뿐인데, 이해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었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읽기를 잘 한 것 같고 요즘 들어 이렇게 정독한 책도 없었던 것 같다. 졸업연주다 실습이다 바쁜 와중이었지만 틈틈이 이 책을 읽으면서 춘하추동 사건처럼 충격을 받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 뒤이어 읽은 우리음악의 맛과 소리깔에 대해서도 훨씬 튼튼한 바탕을 깔고 읽게 된 것 같아 시너지 효과를 얻은 것 같다. 다른 동기들에게도 시간이 아깝지 않으니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국악개론 재수강을 하면서 과제가 너무 밀려 거의 4일 밤낮으로 레포트만 주구장창 써댔던 날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국악적 마인드를 다시 정립해 주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특히 얼마전에 변님이 부르셔서 혼내기도 많이 혼내셨지만, 글은 잘쓰는 것 같다고 칭찬해 주셔서 그 시간들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나도 국악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대학에 왔다. 교원대가 아니었으면 그 어디에서도 이런 국악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어쨋든 나는 국악 전공이 아니니까.. 이곳에 있었던 4년의 시간을 그리 짜임새 있게 보내지는 못했지만, 여러가지를 많이 얻고 간다. 물론 임고를 한방에 붙는 게 제일 얻어가는 거지만 그건 두고봐야겠다.ㅋ 화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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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t
제 동기가 쓴 글이네요^^ 과제로 제출한 것 같진 않고 본인 블로그에 올린 글 같아요. 이 친구는 임용고시에 한번에 합격했고, 지금 봉화에서 음악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친구가 이 글을 보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아요~ 2013/04/14 x  
  우실하 이메일을 아시면 제게 연락주세요 woosilha@kau.ac.kr 20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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