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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19-08-16 19:48:46  (조회수: 63)
이 름    우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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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9.9.16일 [뉴시스] 기고문 : 아베 총리와 김삿갓 김병연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3&aid=0009403145


[기고] 아베 총리와 김삿갓 김병연
등록 2019-08-16 13:35:52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친가와 외가는 일본 근대사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 명문가였으나 상반된 노선을 걸었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는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으나 풀려난 뒤 총리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는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요직을 지내며 제국주의 확장의 최전선에 섰던 사람이다. 정계의 거두가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번을 개정하고자 노력했다. 기시 노부스케의 할아버지이자 아베의 외고조부인 오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1850-1926)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의 문하에서 사상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육군대장 출신이었다. 아베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정한론의 발생지인 야마구치현(山口縣)에 있다. 특히 외가는 이러한 정한론의 영향아래 있었다.

   그러나 중의원을 지낸 아베의 친할아버지인 아베 간(安倍寬: 1894-1946)은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에 맞서 ‘전쟁 반대’를 외치며 반군국주의의 길을 걸은 평화주의자였다. 아베는 외할아버지와 달리 친할아버지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친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 1924-1991)도 외무대신을 지낸 평화헌법 옹호자로 반전-평화주의를 주장한 친한파로 알려졌다.

    아베는 외무대신이던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1982년에 정계에 입문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베의 정치적 멘토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였다. 그가 유난히 손자들과도 잘 놀아주던 것을 아베가 외가 쪽으로 기운 이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로 불리는 기시 노부스케는 1936년에 만주국 산업부 차관으로 있다가, 1940년 귀국하여 1941년 도조 히데키 내각의 상공대신이 된다. 1941-1943년 전시 상황에서 거의 모든 부분의 대신(장관)과 참모총장까지 겸한 도조 총리 아래서, 기시는 1943년부터는 군수성 부대신(차관)이 된다. 확전이냐 종전이냐의 갈림길에 선 1944년, 기시는 전쟁의 확대와 강행을 주장하는 도조와 대립하였고 도조 내각이 와해되는데 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로 기시는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되지 않고 3년 뒤 석방되었다.  

  그러나 기시는 1941년 진주만 습격 당시에 상공대신이었고 이후에도 군수성 부대신으로 전쟁 범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기시가 아베의 기억에는 ‘꿈을 못다 이룬 자랑스러운 외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아베가 전력을 다하여 이루고자하는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의 평화헌법 개정’이라는 꿈은 외할아버지의 꿈이기도 했다.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태도나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의 저변에는 외할아버지의 생각과 꿈이 깔려있다.  

    필자는 아베의 언행을 보면 항상 김삿갓 김병연이 떠오른다. 김병연(金炳淵: 1809-1863)은 당시 명문가인 안동 김씨로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김병연의 할아버지는 ‘홍경래의 난(1811년, 순조 11)’ 당시 선천부사(宣川府使)를 지낸 김익순(金益淳: 1764-1812)이다. 홍경래의 난 당시에 가산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 1768-1811)는 대항하다가 전사하여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선천부사였던 김익순은 반란군에 항복한 천고의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하고 집안은 몰락하게 된다. 당시 6세였던 김병연은 어머니와 형 등과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고, 어머니는 이런 사정을 어린 김병연에게는 철저히 숨겼다.

   불행한 가정사를 알 길이 없던 김병연은 성장하여 향시에서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향시의 시제가 ‘가산군수 정시의 죽음을 논하고 하늘에 사무치는 김익순의 죄를 탄식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병연은 김익순의 불충에 대해서 ‘한 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 번 죽어 마땅하다’고 비판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바로 친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책과 번민에 빠지게 된다. 이후 그는 세상을 등지고 죽장과 삿갓을 쓰고 천하를 유람하며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많은 시를 남긴 방랑시인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묘소도 1982년에야 영월읍 와석리에서 확인되었다.

    아베 총리가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나 여기에서 비롯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강제 징용 문제 등에 대해서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사례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을 위한 여러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과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치는 행위 자체가 아베의 생각을 보여 준다. 그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지니고 있다.  

   아베의 행보는 ‘몰랐던 가정사의 진실’를 알고 부끄러워하며 세상을 등진 김삿갓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아베 총리가  ‘아베삿갓’이 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제라도 몰랐던 과거사를 직시하고, 아베삿갓이 되어 조상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참회하며 일본 열도를 주유하는 방랑시인이 될 생각은 없는가?  

우실하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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