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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의 논문 및 발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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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2-07-03 21:19:41  (조회수: 4071)
이 름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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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화적 강도(?)와 민족문화(1999)



"문화적 강도(?)와 민족문화" (현대음악신문, 199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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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신문} 1999. 2. 2일자.
'문화적 강도(?)'와 민족 문화
                                              우실하(사회학박사, 연세대, 홍익대 강사)
1.  '문화적 강도'
                        
  으슥한 골목길을 가다가 복면을 한 강도가 "너 목숨을 내놓을래? 지갑을 내놓을래?" 라고 하면서 칼을 들이댄다고 하자.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아! 나는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고, 지갑을 내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강도'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극히 제한된 선택지(목숨 아니면 지갑) 가운데 선택을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행위의 선택지가 제한되지 않고 열려있다면, 그는 이미 강도가 아니다. 예를 들어 강도가 "너 목숨을 내놓을래? 지갑을 내놓을래? 아니면 그냥 갈래? "라고 한다면 그는 이미 강도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절대 음감(音感)이 발달하는 4-5세 전후의 아이들에게 "너 피아노를 배울래? 바이올린을 배울래?"라고 친절하게(?)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다. 그러나 그런 민주적이고 자상한 이 땅의 어머니들은 모두가 문화적인 의미에서 '강도(?)'다.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선택지에는 우리의 음악이나 악기는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강도'(어머니) 앞에서 '목숨과 지갑'(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사이에 놓고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는 '행인'(어린이)과 똑같은 입장인 것이다.

  필자는 왜곡되고 종속적인 문화구조에 의해서 '구조적으로 제한된 선택지'가 강요되는 사회적 상황을 '문화적 강도'라고 부른다. 이것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기 전에는 감지되지 않는 것으로,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시된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문화적 강도'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다. 한복은 하나도 없는 옷장을 열고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하고 자유롭게(?)고민하는 사람이나, 국악음반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하고 음반을 뒤적이고 있는 이는 이미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의 등뒤에는 보이지 않는 문화제국주의라는 강도의 날카로운 비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선택지들의 대부분이 전통 문화라는 점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 문화가 '수수께끼'가 되어버린 현실!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 문화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이런 문화적 비극이 우리의 현실이 된 것일까?  

2. 우리 문화사의 특수성

서구 일변도로 종속된 우리의 현실 문화가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데에는 우리 문화사의 특수성이 저변에 깔려있다. 대부분 제3세계는 주로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는 곧 '반(反)서구 '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를 모방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은 까닭에 반제국주의는 '반(反)일본'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뿐 '반서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서양은 언제나 일제와 대비되는 것으로 일제의 침략 의도를 견제하는 '고마운 나라'(?)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1)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 위반되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서구의 모습은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에게는 우리를 돕는 고마운 '우방이자 친구'로 여겨졌고, (2)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성경의 한글 번역은 천대받던 한글을 보급하는 근대적 계몽주의자들의 고마움으로만 기억되고 있으며, (3)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한 '선교 기지'로 설립된 각종 학교들이 단순히 근대 교육의 기초를 만들어준 '고마운 이웃'의 자비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을 맞이한 제3세계가 '반서양주의'를 외치고 있을 때, 우리는 고마운(?) 미군정(美軍政)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고 있었다. 모든 것이 미국의 기준과 가치에 입각한 것이었다. 일제에 이어,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잣대와 가치 기준에 입각해서 우리의 전통 문화가 다시 한 번 재단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문화사의 '비극'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는 아직도 피가 솟구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서구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거의 무비판적이다.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온통 법석을 떨면서도, 정작 서구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는 아무런 제약 없이 들어온다. 그 와중에 젊은이들은 서구 문화에 길들여지고, 그들의 2세에게는 더욱 강력한 '문화적 강도'가 되어 가는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 문화의 시대도 '서양 닮아가기'로 일관한다면, 우리 문화의 21세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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