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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2-10-27 12:04:46  (조회수: 3144)
이 름    우실하
제 목    북에서 열린 남북공동 단군학술연구에 대한 인터뷰(대한매일,10.9일)


2002년 10월 ▣ 이달의 언론보도 (7)

  


   (대한매일,10.9)
  개천절인 지난 3일 평양에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역사학자들이 모여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토론회를 가져 안팎의 눈길을 끌었다. 북한 력사학회와 우리측 단군학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 학술토론회는 단군과 고조선의 실체를 남북이 학문적으로 수용,함께 체계적인 연구의 초석을 놓자는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였다. 단군학회 회장으로 이번 학술대회에 남쪽 학자들을 인솔하고 돌아온 윤내현(63) 단국대 대학원장은 '이번 학술토론회는 그동안 일제에 의해 망실돼 온 우리 고대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복원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무척 뜻깊고 고무적인 행사였다.'고 기꺼워했다.

윤 교수는 '그동안 우리 문화의 모태이자 역사의 기원이면서도 실체를 모호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던 많은 사람들이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재성과 의미를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 교수를 만나 이번 학술행사의 의미와 우리 역사학의 문제들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이번 평양 학술토론회의 의의와 성과는 무엇인가.
남북한 학자들이 제3국이 아닌 우리 땅에서 학술행사를 가진 것은 이번이처음이다.3년 전부터 준비해 원래는 지난해에 갖기로 한 것이 이번에 열린 것이다. 북쪽에서 사회과학원과 김일성대학 등의 권위 있는 교수 11명이 참석했으며, 우리 쪽에서도 9명이 나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학문 분야에서 남북 공동연구의 물꼬를 튼 셈이다. 또 남북이 역사학자 교류와 공동연구에 합의한 점도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다음번 서울 개최가 실현됐으면 좋겠다.
◆북한의 단군 인식은 어떠한가.
과거 북한 학자들은 단군보다 고조선에 더 집착했다.1970년대까지 우리의 고대사 연구가 거의 없었던 데 비해 북한은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실제로 고조선은 만주 일대를 아우른 우리 역사상 최대의 고대국가였으나 삼국'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그 실체를 모두 잃고 말았다. 여기에 일제 식민사관이 개입하면서 우리는 타의에 의해 고대사를 잊고 살았다.

생각해 보라. 고조선이 없으면 우리는 과정없이 형성된 민족이라는 말이 되는데,이게 가능한 얘긴가. 이런 점에서 북한은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했다.강역(彊域)문제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훨씬 넓게 잡고 있다. 북한의 고조선 연구는 지난 93년 단군릉 발굴이 전환의 계기가 됐다.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적 역사관에서 볼 때 우상을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으나, 그후 단군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뀌어 지금은 고조선 대신'단군조선'이라고 칭하는 정도다.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북한의 그러한 인식이 우리와는 크게 다르지 않나.
아직은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또 이번 학술토론회에서 북한 학자들이대체로 단일한 학설을 편 반면 우리는 시대구분이나 도읍설 등에서 이견이있었다.연구,정리할 과제다.

◆그 차이를 학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당연하다.해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번에 확신했다.

◆주체사상의 북한이 단군릉을 조성한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또 그단군릉이 어느 정도 실증적 근거를 가졌다고 보나.
북한이 단군릉을 조성한 배경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나, 우리가 단군 실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단군 연구는 단군릉 발굴 이후 시작됐다. 북한은 단군릉에서 발굴된 유골에 대해 무려 60~70회의 연대 측정을 거쳐 지금부터 약 5020년 전의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것이 옳다면 고조선의 역사를 지금보다 훨씬 앞당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군을 허구적 인물 정도로 알고 있는데.
식민사관의 영향이 크다. 중요한 것은 그 실체성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단군의 역사는 바로 우리 역사학의 뿌리다. 이는 역사적'상징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역사학이 사료를 근거로 하는 학문이나 그렇다고 상징성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군학에 대해 우리 사학계의 주류는 어떤 입장인가.
주류'비주류를 떠나 명백한 역사를 제대로 탐구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족적 불행이다. 일본인들은 철저하게 고대사와 단군의 실체를 부인했다. 해방후 단군 연구가 되살아나는 듯하다가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이내 잊히고 말았다. 당시에'민족'이니'민족 정체성'이니 하는 말은 금기였지 않나. 우리 역사에서 불교'유교처럼 지배계층의 이념으로 작용한 외래문화가 유입되기 전의, 그 온전한 민족 원형은 고조선에 있다. 이런 점에서 고대사는 바로 우리 역사학의 뿌리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고대사 연구는 무척 취약하다.

◆우리 고대사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나는 실증주의적 학자다. 과거 국사교육심의위원회에 잠깐 몸담은 적이 있는데, 당시 우리 고대사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지 않으면 심의안에 서명할 수 없다고 버티다 결국 그만뒀다. 그게 계기가 돼 국사교과서에서 고조선 지도가 바뀌긴 했지만….
문제는, 실체가 분명한 고대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일본 학자들은 '고조선에 관한 사료가 너무 후대에 기록됐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나는 주로 중국측 자료를 취해 연구해 왔다. 식민사관은 일제의 주장과 방법을 모두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식민사관이 문제라면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다. 아무리 식민사관이 문제라고 하나 우리가 합리적으로 우리 역사에 접근했으면 지금처럼 (폐해가)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제와 독재정권의 탄압과 제약을 인정한다 해도 우선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고대사에 대한 우리 사학계의 학문적 성취도를 평가해 달라. 전망은 어떻고, 문제는 무엇인가.
최근 들어 연구가 다양해지고 또 성과도 나타나 고무적이다.그러나 문제는있다.가장 심각한 폐단은 학자들이 학파나 학맥에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다.제자가 스승의 오류를 알고도 바로잡지 못한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민족문제는 학파나 학맥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른바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사이에도 갈등이 크지 않나.
재야사학에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이나, 우리 강단사학이 그동안 재야사학을 외면해 온 면이 크다. 우리 학회에서는 재야사학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일단 한자리에 앉아야 한다. 토론과 대화로 이견을 해소하고 의견차를 좁히는 게 바람직하다.

◆단군이나 고조선에 관한 현재의 교과서 기술이나 교육상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의지와 관계되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역사는 단순한사건의 나열이라기보다 그 사건 속에서 정신과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실제로 우리는'홍익인간'을 주창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없었다.

역사적으로는 각 시대를 이끈 지식인들이 우리의 원형 문화 대신 외래문화를 우위에 둬 온 점도 반성할 점이다. 이렇게 해서 망실된 우리 문화의 원형을 고대사를 통해 되찾아 이를 후대에게 바로 가르치는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심재억기자 jeshim@k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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