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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2-06-14 00:40:30  (조회수: 8121)
이 름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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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공저,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서울: 예문서원, 2000)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서울: 예문서원, 2000), 264쪽, 8,000원. (총 13명)

젊은 동양학자 13인의 자전적 고백으로 자신이 동양학을 하면서 격어온 여러가지 일들을 평이한 글로 쓴 것이다.  필자를 포함 모두 13명의 글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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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노정용 기자 , 2000-01-30 오전 12:00:00

  '동양주의와 서구주의를 넘어서 동양의 눈으로 동양을 본다.' 철학,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등을 전공한 젊은 동양학자들이 자전적 고백서인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예문서원)를 통해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의 뿌리를 찾아 나서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서구시각을 비판한 목소리는 홍원식(계명대), 이승환(고려대), 한자경(계명대), 최종덕(상지대), 이숙인씨(국민대. 이상 철학 전공)를 비롯해 최준식(이화여대. 한국학), 이윤갑(계명대. 사학), 김석근(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치학), 우실하(연세대. 사회학), 고미숙(고려대. 국문학), 이태호(전남대. 미술사), 송혜진(국립국악원. 음악), 박석준(동일한의원. 의학) 씨 등 나름대로 굵직굵직한 학문성과로 학계 안팎의 주목을 받아온 13인의 동양학자들에게서 나왔다.

  그동안 이같은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적 가치'와 '유교자본주의론' 등 종전의 동양에 대한 담론은 서양의 눈과 마음으로 동양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후 새롭게 등장한 동양에 대한 담론 조차도 서양에서의 새로운 동양보기라는 자기반성적 차원에서 이뤄진 오리엔탈리즘으로 옥시덴탈리즘의 또다른 변형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소장학자들의 비판은 동양의 눈으로 동양을 보기위한 진정한 첫 출발이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홍원식교수는 '방법으로서 동도동기(東道東器), 그리고 참다운 동서만남을 고대하며'에서 '20세기를 보내면서 전개된 한국과 동양에 대한 담론들은 오리엔탈리즘이란 이름아래 수없이 오고갔지만 결국 동양은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라곤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본 대상이라는 것일뿐 그 속에 우리는 없었다. 우리 동양은 주체로 서 있지 못했고 서양의 눈과 서양의 마음으로 우리 동양을 들여다보았을 따름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홍교수는 또 '우리 동양은 뿌리가 잘리면서 창조적 발전의 기회는 박탈당한 채 전근대의 시간표에 묶이고 남이 짜놓은 근대의 시간대를 지나면서 헛발질만 거듭해왔다'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지금 뿌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남의 나무뿌리를 빌려다가 가지를 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동과 서의 만남은 뿌리와 줄기가 아니라 뿌리와 뿌리가 만나야 하고, 나아가 꽃과 꽃에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식교수는 '나의 한국학 여정기'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슨 볼 게 있느냐고 힐문하다가도 외국학자가 한국의 무엇이 좋다고 하면 그제서야 우리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고 꼬집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철학이나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동양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모여 통합학문적인 시각에서 '열린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근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비서구사회가 그랬듯이 우리 사회 역시 서구와의 만남을 통해 현저한 '인식론적 단절'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국사람이긴 하되 전통적인 것들보다는 서구적인 것들에 더 익숙해져 단군신화보다는 그리스-로마신화와, '논어'나 '맹자'보다는 '국가'와 '정치학'과 더 친숙해짐으로써 서구세계와 사상을 우리의 지적(知的)뿌리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또 최종덕교수는 독일유학에서 돌아온 직후 '동양인인 우리가 서양보다 더 서양적이었고, 역설적이게도 많은 동양적이라는 것들의 표제어는 서양에 의해 이름 붙여진 것이었다. 갑자기 동양학에 대한 열기가 일어났지만 그 열기의 실상은 비동양적인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우실하교수는 '동양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학의 현재와 미래'에서 '국가 시민 시민사회 봉건제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 대부분의 사회학적 주요 개념들은 서구의 독특한 역사과정을 배경으로 탄생한 것으로, 역사과정을 달리하는 동양에는 적용시킬 수 없는 개념들이다'며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고 동양사회학과 한국사회학을 위한 이론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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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최영창 기자.  2000-02-09 오전 12:00:00

젊은 학자들의 동양학 길찾기
                  
  지난 1996년 세계적 석학인 위르겐 하버마스가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국내 학자들이 우리사회가 모범으로 삼을 서구의 가르침을 구하자 하버마스는 “한국의 경우 서구에서 이론적 모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불교·유교의 문화적 유산을 잘 파헤쳐 근대적 삶과 조화될 수 있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말했었다. 하버마스의 이 말은 같은 시기 한국을 방문했던 중국의 석학 리쩌허우(李澤厚)가 국내에서 철저하게 주목을 받지못했던 현실과 함께 우리에게 묘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에게 동양,나아가 한국은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철학·사학·한의학 등 동양학 각 분야의 소장 학자 13명이 쓴 ‘동양을 위하여,동양을 넘어서’(예문서원)는 이들이 동양학을 전공하면서 느낀 애정과 고뇌를 여과없이 전달하고 있는 자전적 고백서이다. 서구의 이론과 사상이 압도하고 있는 우리 학계의 현실에서 동양학자들은 이 책을 통해 새롭고 진정한 동양학의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홍원식 계명대교수(철학)의 ‘방법으로서의 동도동기, 그리고 참다운 동서만남을 고대하며’는 이 책의 서론격이다. 지금까지의 동양학 연구가 서양의 시각과 방법에서 바라본 것이었음을 반성하는데서 출발한 홍교수는 “서도동기(潟東器)가 근대 이후 우리가 걸어온 길이라면 이제는 우리가 원래 하나의 뿌리였음을 기억해내고 확인하기 위해 ‘방법’으로서의 동도동기(東道東器)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근대 이후 동양은 자신의 혈관 속에 강제 주입된 서양의 피로 말미암아 문화적·철학적 혼혈아가 됐으며,이에따라 서양과의 진정한 만남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양이 진정으로 동양의 모습을 되찾을 때만 서양과의 완전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 홍교수의 주장이다.

  이승환 고려대교수(철학)는 ‘다름의 존중과 다양성의 철학을 위하여’란 글에서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근대가 아닌 다른 사유체계로부터 구해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동양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이런 사유의 계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자신의 관점만을 유일하게 옳은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타인종·타문명에 강요해온 서구 근대성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 한국철학의 과제로 근대성의 성과 가운데 찬란한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의 우수성을 접목시킨 ‘화쟁(和爭)의 철학’을 제시한다.

  ‘역사학의 패러다임 전환문제와 동양학’이란 주제의 글에서 이윤갑 계명대교수(사학)는 서양 근대역사학의 도입으로 역사학을 과학적 학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만 강하지 정작 역사나 역사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빈약한 우리 역사학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한국사학계를 이끄는 모토로 ‘과학적 역사학’ 혹은 ‘실천 과학적 역사학’을 든 이교수는 “한국 근대의 역사학은 철학이 빈곤한 과학만을 추구해왔다”며 “과학보다 역사철학에 가까웠던 동양학적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최준식(이화여대·종교학)한자경(계명대·비교철학)이태호(전남대·미술)최종덕(국민대·과학)교수 등과 김석근(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정치사상연구실장·정치학)우실하(연세대강사·사회학)고미숙(고려대강사·문학)송혜진(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음악)박석준(동일한의원 원장·한의학)이숙인(국민대강사·여성학)씨등이 각자의 분야에서 느낀 동양학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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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조병활님의 서평이다. 이글은 불교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http://www.budgate.net/Scripts/addon/BookReview/column.asp?id=207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를 읽고
                                                                                        조병활

  '동양'에서 태어나고 '동양'에서 자란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동양'을 잘 모른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곳을 알려고 하지 않은 '개인적 노력부족', 사회 저변에 흐르는 알 수 없는 '서구 지향적인 태도' 등. 개인적으론 '우리 나라의 교육체계'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잘 생각해보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음악 시간에는 피아노 장7음계가 보편적인 음의 기준인 것으로 배웠고, 미술 시간에는 데생과 크레파스화 그리고 수채화가 보편적인 미의 표현인 것처럼 학습했다." 세계사도 서양중심, 여타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다. 국어 국사를 제외하곤 말이다. 다시 말해 "교육 때문에 우리들은 피아노 음만 듣고 가야금 소리는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 됐고, 수채화만 감상하고 수묵화는 알아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들 뇌리 속에는 자연스레, 아주 자연스레 서양은 좋고 뛰어나고, 서양·서양인과 다른 것은 버리거나 바꿔야 되는 것들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죽는 사람들은 항상 비(非)백인들이다. 어린 시절 서부영화에서 인디언들이 죽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환호했던가. 인디언들이 마치 천부적인 악인이라도 되는 양.

   유감스럽게도 이런 현상은 전통종교라는 불교 내부에서도 '현재' 일어나고 있다. 구도과정이라는 비슷한 내용을 한국인이 책으로 엮으면 왠지 시시해 보이고, 서구에서 태어나 한국에 와 살고있는 이방인이 출판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이 단적인 예다.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불교적 교리를 생활 속에 접목해 실천하면 성자(聖者)가 되고, 우리 나라의 여러 곳에서 수행하는 수많은 무명인들은 전부 수행도 제대로 안 하는 인물들로 간단하게 치부되는 현실도 그 한 예에 속한다. 한국불교에는 마치 진정한 수행자가 없는 양 선전된다.

   정말 그럴까. 물론 오랜 불교적 전통에서 살아온 우리가 보기에, 서구 중심적인 교육을 받아온 '그 우리'가 보기에, 한국에서 "다른 종교에 계속 밀리기만 하는" 불교를, 그것도 서구사회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서양사람은 대단하게 보일 것이다. 실제 그 분들은 대단한 수행자임에 틀림없다. 다만, 내가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 서양 분들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떠나 "왜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남들이 지적해 주면 그 제서야 인식할까"하는 점이다. 이것을 나는 '서양 콤플렉스'로 명명하고 싶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위에서 지적한 이런 저런 이유로 동양인인 우리는 결코 동양인이 못된 셈이다. 단지 동양'적'일 뿐이다. 서구의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태도를 소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몰이해, 은연중에 나타나는 동양 비하 등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동양에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엄밀하게 보면 바로 이 오리엔탈리즘적 시각과 사고로 '우리 자신(=동양)'을 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에 불교 있는 불교열풍 아니 선(禪)열풍은 바로 그 예에 속한다. 서구에서 특히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선이 대안사상인 것처럼 선전되니깐, 그리고 그 곳 학자들이 불교와 선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주니깐, 우리 나라 학자들도 '덩달아' 불교와 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언제는 불교와 선이 없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치 선이 우리 곁에 그 동안 없다 최근에 들어온 양 '호들갑'을 뜬다.

   물론 "전통적인 모든 것이 최고"라는 생각도 경계해야 한다.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설(說)이 바로 "서구는 이분법 동양은 상생적 세계관, 따라서 서구의 세계관은 자연파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대단히 자의적이고 도식적인 생각을 들 수 있다. 서구는 과연 이분법이 지배한 사회고, 동양에서는 이분법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판단한다. 다만 서양의 경우 발전과 혁명의 와중에 이분법적인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고, 동양의 경우는 원융적·일심적 세계관 속에 이분법을 아울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A는 A가 아니다. 고로 더 큰 A이다. A는 A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논리보다는 "A는 A이다. A는 A가 아니다"는 논리에 더 충실하다. 이분법은 세계와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동양 역시 이분법적인 세계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군자와 소인', '중생과 부처'는 이분법적인 구분 아닌가. 유가에서는 군자와 소인을 철저하게 구분해 소인은 군자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하고, 불가에서는 중생과 부처를 갈라 중생 앞에 '무명'이라는 말까지 붙인다. 유교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불교보다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특히 연기적 세계관으로 "중생과 부처는 하나"를 역설해, 이분법적인 세계인식을 깬다는 점이 항상 결론에 붙는다. 요약하면 동양에서도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구는 이분법, 동양은 다원적'이라는 식으로 서구를 보는 것 - 학자들은 이를 '옥시덴탈리즘'이라고 부른다 - 도 나는 싫어한다. 세계와 다른 사회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까닭이다.

   이상의 생각은 최근 도서출판 예문서원에서 출간된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를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젊은 동양학자 13인의 자전적 고백'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상당히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강단학자'들처럼 점잖 빼거나, 어렵게 글을 쓰지 않는다. 아주 평이하게 자기들이 동양학을 연구하게 된 동기와 이유, 앞으로의 계획, 동양철학 연구의 문제점, 한국학계의 어두운 점 등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누에가 실을 자아내듯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홍원식(철학·계명대 교수), 이승환(철학·고려대 교수), 최준식(종교학·이화여대 교수), 한자경(비교철학·계명대 교수), 이윤갑(사학·계명대 교수), 김석근(정치학·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우실하(사회학·연세대 강사), 고미숙(문학·고려대 강사), 이태호(미술사·전남대 교수), 송혜진(음악·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박석준(한의학·동일한의원 원장), 최종덕(과학·상지대 교수), 이숙인(여성학·정신문화연구원 초빙연구원) 등이 이 책의 필자들이다.

   서면(書面)상으로 이들을 만나보기를 기원한다. 정말로. 책값도 8천 원밖에 하지 않는다. '주저'하지 말고 '자신'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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